'전체 글'에 해당되는 글 611건

  1. 2009.01.02 제일모직의 새로운 성장엔진 by cocon
  2. 2009.01.02 배당지수 펀드(KODEX KODI)에 대해서 1 by cocon
  3. 2008.12.30 2008년을 돌아보며.. 1 by cocon
  4. 2008.12.28 한국 현대사의 비극, 생각이 생사를 가르다... by cocon
  5. 2008.12.24 투자(자)의 방향성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들 by cocon

캬오| 03.11/03 00:00 | 조회 21

글을 길게 쓰기 어려워서 간단히 씁니다.

이번분기 결산에서 실적저하로 주가가 폭탄을 맞고 한동안

한참이나 떨어졌네요.

제일모직에서는 양털로 옷만 만드는게 아니고

뒷편에 부지런히 키우는 첨단 소재산업이 있습니다.

LCD소재를 만든다는군요.

삼성과 소니의 LCD 제휴 소식이 있었고

제일모직이 옷장사에서 소재장사로 크게 알려지는날

주가가 몇단계 업그레이드 될겁니다.

저는 주먹구구 가치투자라서

정확한 근거를 제시하긴 좀 부족합니다.

제 투자철학중 "알려지지 않은 신 사업에 주목하라" 항목이 있군요

-삼성테크윈의 방위산업도 주목하고 있습니다.

그냥 참고하시길..

* 자수하겠습니다. 템플턴 투신운용 포트폴리오에서 컨닝한 종목입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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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당지수 펀드(KODEX KODI)에 대해서

현재점수0.0  

캬오| 03.10/28 00:00 | 조회 16

오늘 이 종목으로 제 포트의 35%를 채웠습니다.

상장한지 얼마 되지않아서 챠트를 판단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배당을 제대로 주는 회사들을 한묶음으로 살 수 있다는 매력이

넘 큰지라 일단 채웠습니다. 배당으로 묶여있어서 변동성이

적어보이기도 하구요

문제는 KODI(배당지수)의 적정치가

어느정도인지 감이 안잡힌다는 거네요

거래소의 경우 종합주가지수 700을 중심축으로 출렁거리곤 하는데

KODI의 경우 개발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자료도 그리 많지 않은

편이네요

그래도 우리나라 주식시장에 배당주를 중심으로 재편될거라는 생각에

오래오래 들고갈 생각입니다.

팍스넷에 가보니 아직 글이 한개도 없더군요

ETF펀드도 가치투자를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 펀드 가지고 계신분은 댓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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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밸류스타 시절부터 시작된 비우기를 지금에서야 제대로 돌아볼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34년동안 짐처럼 지고온 강박이 내가 지고가야만 하는 짐이 아니란 걸 깨달았다.
스케이트는 스케이트장에서만 탈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싸이클은 밸로드롬에서만 탈 수 있는게 아니다.
그냥 얼음이 얼었을때 꺼내서 타는 것이고, 길이 있고 자전거를 마련하면 탈 수 있는것이다.
무엇을 시작 하기 위해 너무 진을 빼면 인생이 피곤해진다.
지금 하지 않으면 못할일을 하기로 했다. 아이와 놀땐 내가 아이가 된것처럼 같이 놀아주고..
아내와는 연애할때처럼 잘 대해주고.. 지금이 얼마나 소중한 시간인가..
그리고는 그 짐을 내려놓고 그 짐안에 가득든 여러가지 것들에 대한 미련도 버리는 중이다.
매일매일 나는 가벼워지고 있다.
수원 월드컵 경기장과, 수원화성을 보면 히스테리 증세가 날 때 즈음..
스스로 에너지를 잃어가던 모임도 접었고..그리고 둘째가 생기고...
꿈에도 그리던 지리산 화엄사를 홀로 여행했다. 구례와 화엄사에 들어 마셨던 차맛과 우울증걸린 19살 남자아이, 아름드리 모과나무는 잊지못할추억이 되었다.

한국은행에 들어왔다. 인생에서 놓지 못할 것은 없다. 손에서 힘을 빼면 모든것이 연기처럼 흘러가버린다.
내년 우리 회사 펀드를 제대로 시작하려고 한다..

나를 믿어주는 사람과, 날 사랑해주는 사람과 내가 사랑하고 지켜줄 사람이 많다는 것이 어떤것안자 느낀 한해였다.
주식은 개판이되었지만 인생에서 내 의도대로 가장 많이 산, 2009년을 위한 2008년은 행복한 한 해였다.
올해 뿌린만큼 내년에 거둘 생각이다.
내 스무살때의 다짐처럼 나는 매년 성장하고 있다.

天將降大任於是人也에
고로 하늘이 어떤이에게 큰일을 맡길 때는 이러하다.
必先苦其心志하며 勞其筋骨하며 餓其體膚하며
먼저 그 심지를 고달프게하고, 근골을 피곤하게 하며, 그 생활을 주리게하며

空乏其身하여 行拂亂其所爲하나니
그 몸을 궁핍하게하며, 행함에 이루는 바를 어렵게 하나니

所以動心忍性하여 曾益其所不能이니라.
마음에 참는 바를 불러일으키려고 그 하고자 하는 바를 이루지 못하게 한다.

人恒過然後에 能改하나니
사람은 그런 연후에 능히 바뀌느니

困於心하며 衡於慮而後에 作하며
마음에 곤궁함이 있고, 그 몸에 부딪힘이 있은 연후에 일어나며

徵於色하며 發於聲而後에 喩라니.
얼굴색이 변하고, 소리가 난후에야 깨닫는 것이러니.

入則無法家拂士하고 出則無敵國外患者는 國恒亡이니라.
안으로는 법을 지키고 북돋우는 이가 없고,
밖으로는 적과 외환이 없는 나라는 망하느니라.

然後에 知生於憂患而死於安樂也라니.
그런 후라야만 우환 속에 삶의 길이 있고,
안락함 속에 죽음의 길이 있음을 아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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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백 년전만 해도 일본의 식민지였으며,
농업이 모든 산업의 전부나 다름없던 농업국가였다.

서양제국이 보기엔 별거 없는 동양의 미개인으로 보였던 나라였지만,  조선은 유교정치체제에서 중국에서 왕조가 한 번 바뀌는 500년이나 왕조가 지속되던 법치주의 군주제 국가였다.
조선은 자의에 의한 변화를 선택하지 못한 탓에 나라를 빼앗기고 일본을 통해 충격적으로 많은 변화를 마주해야 했다. 일본의 압제에서 벗어난 이후에도 지배층과 지배층은 친일-친미-반공-독재로 이름을 바꿔달며 긴 명을 이어나간 반면 그 바깥쪽에 있는 사람들은 수도없이 깨지고 다치고 좌절하고 죽어나가길 반복해야 했다.
그럼 그 반대쪽에 있는 사람들이 희생의 댓가로 얻은것은 무엇이었을까... 이 글을 읽으면 생각해 보시길 부탁드린다.

조선이 19세기말 20세기초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세계질서 와중에 우리나라의 많은 지식인들은 친일이냐, 친청이냐, 친미냐, 친러냐에 따라 다양한 생각의 봇물이 터져나왔지만 결국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일본은 우리나라의 주권을 빼앗게 되었다.
이 때 울분을 삭히지 못한 사람들은 자결하거나(민영환) 단식끝에 아사 하거나(최익현) 분을 이기지 못하여 타항만리에서 분사(이준)하기도 하였다. "죽은 사람만 억울하다"는 말은 이들에게는 치욕적인 말이랄 수 있을것이다.

이들이 할 수 있는것이라곤 자신의 목숨을 끊는 것 뿐이었다. 아무것도, 어떤것도 이들의 억울함과 한을 달랠 수는 없었다.
단, 나라를 산 일본과 판 조선인(조선왕실를 비롯한 대신들)간의 거래에서 득본사람은 일본만이 아니었으니 그게 문제였지만. 알다시피 항상 거래는 상대가 존재한다.

 이때부터 현대사의 비극은 시작된다.

일본의 압제가 지속되자 민족주의자들은 만주나 미국이나 일본으로 망명하고 이들은 만주벌판에서 일본군과 맞부딛히며 싸우는 동시에, 일본에 투항한 변절한 조선사람들과 싸워야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들을 고문하던 고등계 형사 나까아마가 알고 보니 조선인이었고, 만주에서 처절하게 자신들을 토벌하던 사람들 중 일본의 오장 하야시가 조선인이라는 사실에 입술을 깨물 수 밖에 없었다.
시간이 지나고 임시정부는 이들은 그들이 목숨걸고 지켜야 하는 민족과 조선이라는 나라중 이성계로부터 이어왔던 왕조를 걷어내기에 이르렀다. 이들이 바로 민족주의 우파이다.  이들의 상당수가 일제하에서 목숨을 잃고 가정이 파탄이 났다.
이 때 사람들은 자신들의 사상에 목숨을 걸어야 했다. 친일은 살기에 불편함이 없었지만 민족주의자들은 자신의 생각을 지키기 위해 희생을 치러야 했기 때문이다.

해방후
또다시 현대사의 비극 해방후의 공백기에 찾아오게 된다. 오랜 기간동안 이들이 꿈꿔온 광복은 느닷없이 히로히토의 떨리는 음성과 함께 한 여름에 찾아오게 되었다. 상해에 수립된 독립운동의 성과라 하기엔 이들의 힘은 너무나 미약했으며 UN은 한국을 분할통치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일본의 강제병합부터 이은 광복도 정부수립도 스스로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김구로 대표되는 민족주의 우파, 여운형으로 대표되는 민족주의 좌파, 중도 우파에 속했던 김규식등 일본에 맞섰던 민족주의자들은 불행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정권을 잡은 사람들에게 이들은 불편한 존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이들도 자신의 생각을 지키기위해 목숨을 내놓아야 했다. 이 세 민족주의자의 실패로 조선에는 두 개의 정부가 수립되었다. 하나는 대한민국, 또 하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었다. 전쟁이전에는 좌익은 북으로 우익은 남으로 대충 정리가 되어가는 듯 했다. 하지만 그 사상은 생각의 선택일뿐었다. 적어도 6.25 전까지는 그랬다. 

6.25전쟁
전쟁은 남과 북의 모든 사람에게 공산주의냐 민주주의(자본주의)냐는 것을 선택하게 하였다. 여기에 잘못 대답하면 목숨을 잃는일은 집집마다 매우 흔한 일이었으니, 낮에는 국군 밤에는 인민군식으로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며 동네 지주집 문짝 부수고 죽창질을 강요당하거나, 월북했다가 소식끊긴 남편을 둔 아낙네는 간첩이라고 아기를 끌어안고 총살당하는 일도 비일비재 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이 전쟁을 통해서 생사의 기로에서 이념의 통일을 겪게 된다. 전쟁이 끝나고 남한은 공산당 알레르기에 30년동안 시달려야 했고, 북한또한 마찬가지였다.

전쟁이전에는 자신의 소신에 따라 산 사람들의 생이었지만 이후에는 자신의 소신을 선택하기 이전에 다른 생각을 접할 기회가 점점 사라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독재와 개발시대..

그리고 전쟁이 끝나고 전쟁이후의 어수선한 틈을 타 매국행위를 했던 사람들에 대한 조사와 처벌을 골자로 했던 반민특위는 해체되고 친일파들은 일종의 면죄부를 받게 되었다. 4.19혁명이 일어나고 이승만 대통령은 하와이로 망명을 하고.. 그리고 박정희 시대가 열리게 된다. 4.19때 사람들은 자신들이 투표로 세운 장면 정권을 박정희 소장이 엎어버린 것이다. 물론 이후에 민정으로 전환하긴 했지만 70년 이전에 사람들은 자신들이 생각에 대해서 끊임없이 생사를 강요당했으며, 과거의 과오에 대한 죄값을 치르지 않은모습을 너무나 많이 보아왔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선택에 대해서 좋던 나쁘던 결과를 내 본적도 없이 그렇게 개발시대로 흘러오게 된 것이다.

워낙 많은 공과가 있는 사람이지만, 이 시대에 독재(하에서 부당한 자유억압 )을 불편해했던 많은 사람들은 또 싸우게 됐다.

이 때엔 4.19에 나왔던 민주화운동세력(?) 1세대에 이어서 2세대가 나오게 된다. 2세대가 김영삼, 김대중과같이 80~90년대에 정권이라는 과실을 맺은 사람들도 있었고, 장준하처럼 의문의 죽음을 당한 사람도 나오게 된다.

70년대 80년대를 산업화 시대를 거치면서 언론인과 지식인들은 양심을 위해 자신의 생계를 걸어야 했다.

 

상대적으로 친일을 했다가 친미를 했다가 독재에 영합하며 잘 보낸 사람들은 왜 저 인간들은 저렇게 힘들게 사는가 이해를 못할 수도 있겠다.

하나 주지할 것은 지금 발을 딛고 있는 땅이나 갈며 형편없이 살던 이 나라를 근대화 시켜준 것은 일본이며 이 나라를 되찾아 준 것은 미국일수도 있고, 전쟁후의 쑥대밭에 한강의 기적을 일으킨 것이 독재정권이었을지언정.. 만주벌판에서 쓸쓸히 죽어간 사람들과 미국치하에서 빛도 못보고 사라진 선각자들과 독재치하에서 스스로 목숨을 버린 사람들의 덕에 우리는 조선인이 이등국민이라는 열패감을 주입당하지 않고 일본어를 국어시간에 쓰지 않을 수 있게 되었고, 이런 게시판에서 대통령 욕을 서슴없이 할 수 있게 된 것이라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

그들이 생각하는 친일, 친미, 반공이란 이념으로 무장한 보수라는 사람들이 그 가치에 자신의 목숨을 걸 수 있을까. 나는 그것이 가장 궁금하다. 그들이 목숨을 걸 수 있다면 존중하겠다.

우리나라에 1900년 이후에 우리의 선택이 소수의 힘에 의해 부정당하지 않고 뜻대로 가보기 시작한게 불과 20년도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즉 말하자면 우리나라에 사상의 자유가 허락되기 시작한 역사가 20년이고 지금 치열하게 멱살붙잡고 서로를 인정못하는 것도 그런 연원이 있을것이라는 짐작이 드는 것이다.

사람들이 사회적 생활을 하면서 일방적인 이기주의자를 도태시키는것이 유전적으로 획득한 형질이라는 주장이 있다.
내 생각때문에 생과사를 걸어야 하는 역사때문에 우리나라 사람은 몇가지 되지도 않는 생각을 양심과 다르게 타의에 의해 강요 받으며 키워졌다. 심지어 우리세대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으며 오후 다섯시이 애국가가 울리면 주변의 하강하는 태극기를 향해 멈춰서 뭉클하는 나라사랑을 배운바가 있다.
하지만 물질이 풍요해진 지금, 우리는 참으로 생각이 빈곤한 세상을 살고 있다.
거기에다, 어쩌면 우리나라 지배층은 여전히 정신적 이유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미국은 우리가 아니면 안된다라는 사상을 가지고 산다던데, 우리의 기득권은 우리가 하면 안된다라는 사상을 가지고 있는듯하다. 우리나라의 빈곤한 상상력속에 그런 세상을 더 빈곤하고 피곤하게 만드는 이유가은 이런 생각의 다양성과 강대국을 향한 정신적 이유기를 벗어날 수 없다는 희망이 없다는 점 아닐까..  

우리는 어떤 모습이든지 생존해야 한다. 경쟁해서 이겨야 한다는 국가 이데올로기를 주입받고 있다. 국어와 완전히 체계가 다른 영어를 어릴적부터 해야 하고, 경쟁에 너희를 풍요케 하리라라는 확인안된 사실에 모든 "배운 부모"들이 아이들을 80년대 입시세대보다 더 빡센 경쟁을 아이에게 물려주고 있다. 뭔가 감이오지 않는가. 우리는 결과가 모든것을 말해주는 사람들이 지배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80년대 복부인, 졸부는 경멸의 대상이었다. 그 복부인과 한배를 탔다는 혐의가 짙은 2000년대 강부자는 많이도 발전했다. 범접못할 명품가방으로 유행을 선도하기도 하고, 교육시장에서 더 좋은 학원에 다닌 탓에 서울대도 가고, 성형수술로 수억들여 완전 뜯어고친 사람들이 스타가 되기도 하고, 강남불패 성공신화에 경도된 사람들로 인해 한국 아파트는 축재의 수단이 되었다. 참으로 상징적인 변화이다.
우리는 내재적인 재능과 외모에 앞서 돈만 쳐들이면 외모, 체형, 학력까지 어떻게든 바꿀 수 있는 것이 되어가는 것이다.
그들이 심어가는 문화에는 과정은 중요하지 않다. 일정한 체제하의 공정한 경쟁은 학습되기 마련이기에, 점점 복잡해지고 자본요소 투입이 큰 사람이 유리하게 되는 방향으로 게임의 룰이 바뀌고 이것은 시장원리로 강조되고 장려되고 있다.

 이런 내재화된 경쟁의식도 결국엔 다양하지 않은 삶의 방식이 강요되는 환경에서 나오는 것이다. 우리는 사실 대학에 다니지 않아도, 차를 안사고도, 사진이 찍히는 핸드폰이 없이도, 결혼하지 않더라도 살 수 있다. 자신의 삶의 지향에 과정을 맞춘다면 그 어떤 과정도 자신의 의도대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일반적인 삶의 목표에 목표를 맞추는 순간 우리는 무조건 좋은대학에 가야하고, 스펙을 올리기위해서 영어공부를 죽어라고 해야 하고, 그 이후에도 무조건 경쟁에서 대가리가 터지게 경쟁해야 하고, 남들이 주식하고 펀드하면 나도 해야하는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는 것이다.

결국 사람들마다 삶의 방식은 다를 수 밖에 없으며, 사람들이 생각의 차이 한가지 잣대에 목숨을 걸지 않고 살 수 있어야 적든 차든 자신의 재능만큼 남을 배려하는 것이 스스로도 이롭다는 것을 느끼게될 것이다. 

 정말 "죽은 사람만 억울하지"라고 생각하는가.
"똥밭에서 굴러도 이승이 좋다"라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이 글을 지나치셔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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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의 세계에선 누구나 실수를 하게 마련입니다. 나이가 아주 많지 않다면 지금 당장은 얼마를 벌건, 잃건 크게 중요한게 아닐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실수할때마다 무얼 배웠냐는 것입니다. 투자야말로 실수를 해보지 않고는 배울 수 없는 경험치가 지배하는 진짜 약육강식의 세계입니다. 아무리 천재적인 두뇌를 가졌다해도 깊고 넓은 경험의 강을 건너보지 않으면 절대 돈을 벌어서 돌아올 수 없습니다. 실수로 배울 수 없다면 5년후에도, 10년후에도 똑같은 문제로 당신은 고민에 빠질 것입니다.
늘 같은 길에서 늘 같은 돌부리에 넘어지는 모습을 현실에선 볼 수 없지만 투자에선 아주 흔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나만은 예외라고 생각하고, 충분히 알고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그 착각의 이유로는 투자자의 현명함을 가로막는 탐욕이 그 하나이고, 자신이 생각한 현상을 주가로 판단해서 성공했다고 판단하는것이 또 하나입니다. 가치를 보고 사서 가치의 변화와 시세를 함께 보고 파는게 아니라 주가가 단지 많이 올랐다고 맞았다고 기뻐하며 팔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건 자신을 속이는 일입니다.

그런 이유로 투자를 생각할때 자신이 뭘 모르는지 늘 생각해야 합니다. 재무제표에서 땅이 몇억이고 현금이 몇십억이고 연수익이 얼마고 달달달 외운다고 다 안다고 안심할 수 있을까요. 주입식 체제아래서 배운 사람들이라 그런지 왠지 많이 아는것처럼 느낄뿐이지 사실 그걸 안다고 기업에 대해서 잘 안다고 보진 못할것 같습니다. 앞으로 별로 나아질것 같지도 않은 매력없는 기업을 앞에서 뒤로 뒤에서 옆으로 천자문 외우듯이 꿰고 있는 '똑똑한 투자자'를 보면서 의문을 품었던 기억이 납니다. 자신이 똑똑한 투자자라고 생각하고 모든 리스크요인을 파악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순간 그 투자자는 더 위험한 투자에 뛰어들게 되고 더 위험한 투자의 리스크를 잘 알았으면 회피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기도 합니다.
투자를 지속하는데 장애가 될 정도로 위험한 요소를 발견하면 공부를 하거나 대표이사를 면담하거나 현장시찰을 가는게 아니라 손을 빼거나 비중을 줄이는게 더 현명할 수 있습니다.
이건 유학쪽의 인식론과 연관지을 수 있는데 유학쪽에서 이야기하는 지행합일은 다음과 같습니다. "즉 분명히 아는 것은 행동에 옮길 수 있고, 행동에 옮길 수 없는 지는 아직 미숙한 지라고 한다. 그러므로 그가 행동하는 내용이 그의 지의 수준이라고 하는 것이다."
행동할 수 있는 앎을 추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앎으로서 실천해야 하는데 앎으로서 자기기만과 합리화를 해버리는게 똑똑한 투자자가 한번 깨지면 집안을 들어먹는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제가 볼때 중요한 것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1. 중요한건 정보의 양이나 질보다 올바른 방향성입니다. 어디에서 삽질을 하느냐에 따라서 맨땅이 될 수도 있고 금광맥이 터질수도 있습니다.
2. 그 방향에서 필요한 정보가 무엇인지 파악하는 힘 입니다.
3. 팩트와 팩트사이를 메꿀 수 있는 판단력과 자기확신이 필요합니다.
4. 아무리섣달 열흘동안 열심이 공부하고 노력해서 알아낸 기업이더라도 리스크요인이 있으면 서슴없이 버릴 줄 알아야 합니다.

아마 기업과 환경에 대해서 스스로 제대로 질문을 해나간다면 자신이 등대도 없고, 별도 떠있지 않은 캄캄한 밤에 망망대해에서 배를 타고 앉아있는 기분이 들 것입니다. 당신이 대차대조표를 달달달 외우고 있다고 해서 제대로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자기기만입니다. 제대로 알고 있다, 많이 알고 있다는 것은 기업이 가지고 있는 유형자산을 한번 본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그 기업직원과 술을 먹고 매출상황을 알아보는것만은 아닙니다. 투자자가 노력해서 알 수 있는 것은 공식적인 정보와 내부자들에게서 흘러나오는 노이즈들 뿐일 겁니다. 보다 객관적으로 기업을 보려면 시장, 더 나아가 소비자를 알아야 합니다. 시장에서 팔리는 제품은 소비자가 선택하는 제품입니다. 투자자는 기업을 보는것이 아니라 소비자를 향해 있어야 합니다. 투자자에게 궁극적으로 돈을 벌어주는 것은 기업이 아니라 소비자입니다.

투자안을 모색할때 일단 제대로 된 방향을 설정한 다음 그 투자안의 사업기회, 기대수익률, 리스크요인등에 대해서 집중적인 조사를 해야 할 것입니다. 조사로서 이빨빠진 모자이크 조각을 꿰어맞추고 미래를 그려보는 것이 것이 현실에서 최대한 할 수 있는 대차대조표의 세계입니다.
좋은 투자는 이렇듯 이 많은 정보들중 단 한두가지 요소로 성패가 좌우됩니다. 모자이크와 모자이크 조각사이, 거기에서 어떤 미래가 나올지 상상해서 수익과 연결짓는게 투자자의 역량이겠지요.. 이 역량에서 궁극의 세계가 펼쳐집니다.

무엇을 모르는지, 내 힘으로는 알 수 없는 게 무엇인지 또렷하게 알고만 있다면 그 모르는 부분이 당신이 감당해야하는 리스크의 크기가 될 것입니다. 당신이 만약 그 리스크를 두려워하고 자기 힘만큼만 짊어지려고 노력하면 당신의 투자는 조금은 안전해질것이라 생각합니다.

그 리스크를 헤치고 나갈지, 회피할지는 당신의 취향에 달려있습니다. 정답은 없습니다.

 

참고문헌:http://www.gjhyanggyo.or.kr/confucianism/?menu=confucianism_1&sub=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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