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백 년전만 해도 일본의 식민지였으며,
농업이 모든 산업의 전부나 다름없던 농업국가였다.

서양제국이 보기엔 별거 없는 동양의 미개인으로 보였던 나라였지만,  조선은 유교정치체제에서 중국에서 왕조가 한 번 바뀌는 500년이나 왕조가 지속되던 법치주의 군주제 국가였다.
조선은 자의에 의한 변화를 선택하지 못한 탓에 나라를 빼앗기고 일본을 통해 충격적으로 많은 변화를 마주해야 했다. 일본의 압제에서 벗어난 이후에도 지배층과 지배층은 친일-친미-반공-독재로 이름을 바꿔달며 긴 명을 이어나간 반면 그 바깥쪽에 있는 사람들은 수도없이 깨지고 다치고 좌절하고 죽어나가길 반복해야 했다.
그럼 그 반대쪽에 있는 사람들이 희생의 댓가로 얻은것은 무엇이었을까... 이 글을 읽으면 생각해 보시길 부탁드린다.

조선이 19세기말 20세기초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세계질서 와중에 우리나라의 많은 지식인들은 친일이냐, 친청이냐, 친미냐, 친러냐에 따라 다양한 생각의 봇물이 터져나왔지만 결국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일본은 우리나라의 주권을 빼앗게 되었다.
이 때 울분을 삭히지 못한 사람들은 자결하거나(민영환) 단식끝에 아사 하거나(최익현) 분을 이기지 못하여 타항만리에서 분사(이준)하기도 하였다. "죽은 사람만 억울하다"는 말은 이들에게는 치욕적인 말이랄 수 있을것이다.

이들이 할 수 있는것이라곤 자신의 목숨을 끊는 것 뿐이었다. 아무것도, 어떤것도 이들의 억울함과 한을 달랠 수는 없었다.
단, 나라를 산 일본과 판 조선인(조선왕실를 비롯한 대신들)간의 거래에서 득본사람은 일본만이 아니었으니 그게 문제였지만. 알다시피 항상 거래는 상대가 존재한다.

 이때부터 현대사의 비극은 시작된다.

일본의 압제가 지속되자 민족주의자들은 만주나 미국이나 일본으로 망명하고 이들은 만주벌판에서 일본군과 맞부딛히며 싸우는 동시에, 일본에 투항한 변절한 조선사람들과 싸워야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들을 고문하던 고등계 형사 나까아마가 알고 보니 조선인이었고, 만주에서 처절하게 자신들을 토벌하던 사람들 중 일본의 오장 하야시가 조선인이라는 사실에 입술을 깨물 수 밖에 없었다.
시간이 지나고 임시정부는 이들은 그들이 목숨걸고 지켜야 하는 민족과 조선이라는 나라중 이성계로부터 이어왔던 왕조를 걷어내기에 이르렀다. 이들이 바로 민족주의 우파이다.  이들의 상당수가 일제하에서 목숨을 잃고 가정이 파탄이 났다.
이 때 사람들은 자신들의 사상에 목숨을 걸어야 했다. 친일은 살기에 불편함이 없었지만 민족주의자들은 자신의 생각을 지키기 위해 희생을 치러야 했기 때문이다.

해방후
또다시 현대사의 비극 해방후의 공백기에 찾아오게 된다. 오랜 기간동안 이들이 꿈꿔온 광복은 느닷없이 히로히토의 떨리는 음성과 함께 한 여름에 찾아오게 되었다. 상해에 수립된 독립운동의 성과라 하기엔 이들의 힘은 너무나 미약했으며 UN은 한국을 분할통치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일본의 강제병합부터 이은 광복도 정부수립도 스스로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김구로 대표되는 민족주의 우파, 여운형으로 대표되는 민족주의 좌파, 중도 우파에 속했던 김규식등 일본에 맞섰던 민족주의자들은 불행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정권을 잡은 사람들에게 이들은 불편한 존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이들도 자신의 생각을 지키기위해 목숨을 내놓아야 했다. 이 세 민족주의자의 실패로 조선에는 두 개의 정부가 수립되었다. 하나는 대한민국, 또 하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었다. 전쟁이전에는 좌익은 북으로 우익은 남으로 대충 정리가 되어가는 듯 했다. 하지만 그 사상은 생각의 선택일뿐었다. 적어도 6.25 전까지는 그랬다. 

6.25전쟁
전쟁은 남과 북의 모든 사람에게 공산주의냐 민주주의(자본주의)냐는 것을 선택하게 하였다. 여기에 잘못 대답하면 목숨을 잃는일은 집집마다 매우 흔한 일이었으니, 낮에는 국군 밤에는 인민군식으로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며 동네 지주집 문짝 부수고 죽창질을 강요당하거나, 월북했다가 소식끊긴 남편을 둔 아낙네는 간첩이라고 아기를 끌어안고 총살당하는 일도 비일비재 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이 전쟁을 통해서 생사의 기로에서 이념의 통일을 겪게 된다. 전쟁이 끝나고 남한은 공산당 알레르기에 30년동안 시달려야 했고, 북한또한 마찬가지였다.

전쟁이전에는 자신의 소신에 따라 산 사람들의 생이었지만 이후에는 자신의 소신을 선택하기 이전에 다른 생각을 접할 기회가 점점 사라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독재와 개발시대..

그리고 전쟁이 끝나고 전쟁이후의 어수선한 틈을 타 매국행위를 했던 사람들에 대한 조사와 처벌을 골자로 했던 반민특위는 해체되고 친일파들은 일종의 면죄부를 받게 되었다. 4.19혁명이 일어나고 이승만 대통령은 하와이로 망명을 하고.. 그리고 박정희 시대가 열리게 된다. 4.19때 사람들은 자신들이 투표로 세운 장면 정권을 박정희 소장이 엎어버린 것이다. 물론 이후에 민정으로 전환하긴 했지만 70년 이전에 사람들은 자신들이 생각에 대해서 끊임없이 생사를 강요당했으며, 과거의 과오에 대한 죄값을 치르지 않은모습을 너무나 많이 보아왔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선택에 대해서 좋던 나쁘던 결과를 내 본적도 없이 그렇게 개발시대로 흘러오게 된 것이다.

워낙 많은 공과가 있는 사람이지만, 이 시대에 독재(하에서 부당한 자유억압 )을 불편해했던 많은 사람들은 또 싸우게 됐다.

이 때엔 4.19에 나왔던 민주화운동세력(?) 1세대에 이어서 2세대가 나오게 된다. 2세대가 김영삼, 김대중과같이 80~90년대에 정권이라는 과실을 맺은 사람들도 있었고, 장준하처럼 의문의 죽음을 당한 사람도 나오게 된다.

70년대 80년대를 산업화 시대를 거치면서 언론인과 지식인들은 양심을 위해 자신의 생계를 걸어야 했다.

 

상대적으로 친일을 했다가 친미를 했다가 독재에 영합하며 잘 보낸 사람들은 왜 저 인간들은 저렇게 힘들게 사는가 이해를 못할 수도 있겠다.

하나 주지할 것은 지금 발을 딛고 있는 땅이나 갈며 형편없이 살던 이 나라를 근대화 시켜준 것은 일본이며 이 나라를 되찾아 준 것은 미국일수도 있고, 전쟁후의 쑥대밭에 한강의 기적을 일으킨 것이 독재정권이었을지언정.. 만주벌판에서 쓸쓸히 죽어간 사람들과 미국치하에서 빛도 못보고 사라진 선각자들과 독재치하에서 스스로 목숨을 버린 사람들의 덕에 우리는 조선인이 이등국민이라는 열패감을 주입당하지 않고 일본어를 국어시간에 쓰지 않을 수 있게 되었고, 이런 게시판에서 대통령 욕을 서슴없이 할 수 있게 된 것이라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

그들이 생각하는 친일, 친미, 반공이란 이념으로 무장한 보수라는 사람들이 그 가치에 자신의 목숨을 걸 수 있을까. 나는 그것이 가장 궁금하다. 그들이 목숨을 걸 수 있다면 존중하겠다.

우리나라에 1900년 이후에 우리의 선택이 소수의 힘에 의해 부정당하지 않고 뜻대로 가보기 시작한게 불과 20년도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즉 말하자면 우리나라에 사상의 자유가 허락되기 시작한 역사가 20년이고 지금 치열하게 멱살붙잡고 서로를 인정못하는 것도 그런 연원이 있을것이라는 짐작이 드는 것이다.

사람들이 사회적 생활을 하면서 일방적인 이기주의자를 도태시키는것이 유전적으로 획득한 형질이라는 주장이 있다.
내 생각때문에 생과사를 걸어야 하는 역사때문에 우리나라 사람은 몇가지 되지도 않는 생각을 양심과 다르게 타의에 의해 강요 받으며 키워졌다. 심지어 우리세대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으며 오후 다섯시이 애국가가 울리면 주변의 하강하는 태극기를 향해 멈춰서 뭉클하는 나라사랑을 배운바가 있다.
하지만 물질이 풍요해진 지금, 우리는 참으로 생각이 빈곤한 세상을 살고 있다.
거기에다, 어쩌면 우리나라 지배층은 여전히 정신적 이유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미국은 우리가 아니면 안된다라는 사상을 가지고 산다던데, 우리의 기득권은 우리가 하면 안된다라는 사상을 가지고 있는듯하다. 우리나라의 빈곤한 상상력속에 그런 세상을 더 빈곤하고 피곤하게 만드는 이유가은 이런 생각의 다양성과 강대국을 향한 정신적 이유기를 벗어날 수 없다는 희망이 없다는 점 아닐까..  

우리는 어떤 모습이든지 생존해야 한다. 경쟁해서 이겨야 한다는 국가 이데올로기를 주입받고 있다. 국어와 완전히 체계가 다른 영어를 어릴적부터 해야 하고, 경쟁에 너희를 풍요케 하리라라는 확인안된 사실에 모든 "배운 부모"들이 아이들을 80년대 입시세대보다 더 빡센 경쟁을 아이에게 물려주고 있다. 뭔가 감이오지 않는가. 우리는 결과가 모든것을 말해주는 사람들이 지배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80년대 복부인, 졸부는 경멸의 대상이었다. 그 복부인과 한배를 탔다는 혐의가 짙은 2000년대 강부자는 많이도 발전했다. 범접못할 명품가방으로 유행을 선도하기도 하고, 교육시장에서 더 좋은 학원에 다닌 탓에 서울대도 가고, 성형수술로 수억들여 완전 뜯어고친 사람들이 스타가 되기도 하고, 강남불패 성공신화에 경도된 사람들로 인해 한국 아파트는 축재의 수단이 되었다. 참으로 상징적인 변화이다.
우리는 내재적인 재능과 외모에 앞서 돈만 쳐들이면 외모, 체형, 학력까지 어떻게든 바꿀 수 있는 것이 되어가는 것이다.
그들이 심어가는 문화에는 과정은 중요하지 않다. 일정한 체제하의 공정한 경쟁은 학습되기 마련이기에, 점점 복잡해지고 자본요소 투입이 큰 사람이 유리하게 되는 방향으로 게임의 룰이 바뀌고 이것은 시장원리로 강조되고 장려되고 있다.

 이런 내재화된 경쟁의식도 결국엔 다양하지 않은 삶의 방식이 강요되는 환경에서 나오는 것이다. 우리는 사실 대학에 다니지 않아도, 차를 안사고도, 사진이 찍히는 핸드폰이 없이도, 결혼하지 않더라도 살 수 있다. 자신의 삶의 지향에 과정을 맞춘다면 그 어떤 과정도 자신의 의도대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일반적인 삶의 목표에 목표를 맞추는 순간 우리는 무조건 좋은대학에 가야하고, 스펙을 올리기위해서 영어공부를 죽어라고 해야 하고, 그 이후에도 무조건 경쟁에서 대가리가 터지게 경쟁해야 하고, 남들이 주식하고 펀드하면 나도 해야하는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는 것이다.

결국 사람들마다 삶의 방식은 다를 수 밖에 없으며, 사람들이 생각의 차이 한가지 잣대에 목숨을 걸지 않고 살 수 있어야 적든 차든 자신의 재능만큼 남을 배려하는 것이 스스로도 이롭다는 것을 느끼게될 것이다. 

 정말 "죽은 사람만 억울하지"라고 생각하는가.
"똥밭에서 굴러도 이승이 좋다"라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이 글을 지나치셔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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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oc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