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으로 책의 마지막장을 덮었던게 6개월은 지난 것 같다.

그 뒤로 건강관련책 몇 권을 읽다 정말 병원 갈 일이 생겨서 병원에 가고 주사를 맞고, 게임주를 핑계로 게임을 했다.

어느덧 겨울은 훌쩍 지나고 나무마다 새 순이 돋아나서 온 산이 푸릇푸릇 해졌다.

날이 풀리자 검도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저녁시간에 시간을 내서 쭈뼛쭈뼛 기웃기웃 갔는데,

나름 열심이 하는데도 하도 자세가 엉성해서 지나가는 사형들이 내 자세를 봐 주었다.

어쨌던 그렇게 한 달이 또 지났다.

 

그렇게 책을 안 읽었는데도 책꽂이에 더이상 꽂을 자리가 없어서 놓여있는 책들이 수북하게 늘어갔다.

명색이 30년이 넘는 세월동안 취미란에 독서를 쓰던 사람이,

몇 년째 손놓고 있는 책들에, 읽다가 짜증나서 집어던진 버림받은 책도 여려권이고

선물받은 책도 차례를 기다는 책이 여러권이다.

책읽기라는 취미생활은 내가 당겨서 책장을 넘겨 나가야 것이지 영화처럼 눈앞에 펼쳐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누구에게 선물받거나 모임에서 숙제하듯이 읽으면

그것이 고역이 되는 때가 적지 않다.

이제 재미를 붙이려는 검도와, 지긋지긋한 (황반변성) 눈병생각과 아이들의 대시(보드게임이나 레슬링, 씻기기와 공부봐주기)와

아내의 하루정리용 이야기 한두시간을 빼고 책 읽을 시간을 확보하고, 거기다가 한 달에 한 개씩 리포트 쓰기를 하려고

보니 시간을 잘 쓰는게 지상과제가 되어 버렸다.

거기다가 존경하고 좋아하는 투자지인들과 수다도 떨고 세상돌아가는 이야기도 하려니 한달단위로 펼쳐보면 저녁시간을 따로 확보하기가 만만하지 않다.

 

최근 일 주일단위의 우선순위를 조정해서 운동은 틈틈히 점심시간대로 정해놓아 저녁시간에 시간을 활용할 수 있겠다 싶어서 점심때 운동을 하는 것으로 바꾸었다.

가령 점심을 열 두시까지 먹고 열두시에 부리나케 검도체육관에 가면 혼자 인터넷이나 보던 사부님이 알들말듯한 표정으로 개인 교습을 받다시피 목검내지 죽도를 휘두르게 된다. 그리고는 13시에 회사로 복귀해서

일하다가 일곱시에 퇴근해서 집에서 저녁먹고 책읽기, 투자판 돌아가는거 좀 보고 나면 열 두시다.

 

그렇게 저녁시간을 좀 비우고 집에 일찍 들어와서 이야기를 하다가 아내가 공황상태 내지는 무기력증이거나 우울증에 걸린 나를 보더니 내민 책, 파이이야기를 읽게 되었다.

일생동안 내가 DVD로 산 영화 두 편중 하나인[와호장룔]의 감독인 이안의 영화는 작년에 보았고, 책으로 다시 읽으니 영화가 머릿속에서 어른거려서 술술술 넘어간다.

파이는 동물원을 하는 부모님의 뒤를 따라  인도-케나다행 화물선으로 이주하다가 배가 난파당하여 구명보트에서 필리핀 근해에서  맥시코까지 리처드 파커와 표류하며 살아남았는데 이 책의 마지막은 이 이야기의 반전이 기다리는 내용이다.

 

왜 하필 이 책을 펼쳐드는 시점에서 세월호가 가라앉았는지. 이제 다 피지도 못한 아이들이 가엾고 부모님 생각하느라 마음이 착잡하다..(잠시 묵념)

리처드 파커는 파이의 야성, 즉 생존본능을 형상화한 또하나의 자아라고 생각한다.

파이는 원래 채식주의자였는데 비상용 식량, 비스킷이 다 떨어지고 나자 굶주림에 바다거북의 모든 부위를 먹게 되었고

자신 살기위해 리처드 파커에게 조난당한 다른 배의 사람을 먹이로 내주는 일조차 서슴치 않게 된다.

사람을 아무런 자극도 없는 방에 넣어두는 약 석 달 동안의 아르바이트를 모집한적이 있다 한다.

한 때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후기가 올라왔는데 이 실험에 참가한 사람은  석 달을 다 채우지 못하고

실험을 마치자 정신치료를 받았다고 했다.

즉 권태와 무료함은 사람을 병들게 한다는 점을 보여주는것 아닐까. 파이는 죽음에서 최소한의 생존조건을 겨우

낚시와 물을 마시며 견디고 정신적으로는 늘 리처드 파커와 대치하면서 자신이 까딱 잘못하면 언월도 처럼 날카로운

발톰과 날카로운 이빨로 한 점 식사거리로 화하게 될 것이라는 불안감으로 겨우겨우 살아남았던 것 같다.

 

한국사회처럼 자신의 삶을 돌아볼 틈도 없이 한번에 물속으로 수장되거나 무너지는 구조물에 머무르거나

시스템이 제대로 동작하지 않아서 멀쩡한 사람을 송장으로 만드는 한국사회에서는 바다에서 조난당하는 정도의

위기는 쉽게 맞닥뜨리게 되는 것 같다.

한방에 그렇게 세상을 떠나는 일 이외에도 이사다니기에 지치다 못해 빚을 내서 집을 샀는데(혹은 집값이 오를 것 같은 예감에)이자율이 팍팍 올라서 살림이 팍팍해질 수도 있고, 내가 하는 치킨칩 근방에 치킨집이 다섯개정도 개업한다던지

나랑 같이 입사했던 입사동료 절반이 명예퇴직 한다던지 우리는 긴 세월을 살면서 부모님의 모선에서 모두 몇자루 노와

돛을 펼치고 망망대해를 건너는 표류자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내 앞에 있는 동료의 다리를 미끼로 쓰고, 나를 죽이지 않도록 다른이의 등을 밀치면서 살기를 강요당하고 그것을 합리화 시키켜도 되는 사회에서 살아가지는 않는지..

 

내가 투자를 시작하고, 내게 투자의 몇 수를 일러준 선배님이 늘 생존이라는 것을 이야기 하셨다.

생존, 생존, 생존, 처음엔 당연히 그것은 기본이라 생각했는데, 생존하면서 잘하기까지 하는것은 보통일이 아닌 것 같다.

처음엔 사고팔면 무조건 돈을 벌었는데, 몇번 깨지니 별로 신통찮은 일도 잦아기기도 하고

몸도 30대 초반엔 감기한번 안걸리고 튼튼해서 열심이 일했더니 사십을 갓 들어서자마자 봇물터지듯 의료비도 상승중이다.

이렇게 그럭저럭 먹고사는 것도 보통일이 아닌것이다. 운동을 해야하고, 공부를 해야 하고, 시간을 관리해야 하고

내가 누군가에게 진 말빚이 곪지 않도록 수시로 점검해야 한다.

공 다섯개쯤의 저글링 하듯 하나의 일을 제대로 처리 못하면 다음 일에 시간을 제대로 배분하지 못해서 줄줄이 공을 떨구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일을 하다보면 무람없이 시간이 지나고 계절이 지난다. 나는 해초섬에 들어서 그 해초섬에서 잘 위기를 관리하면서 편하게 먹고 살 지,

다시 험한 바다로 나아가 기약없는 표류를 계속해야 할지 정해야 하는 시점에 외있기도 하다.

 

어느 시점 이 표류를 마칠때면

난 두가지 관점으로 내 지난 날을 생각할 것 같다.

지지리 궁상맞고 찌질했던 내 실패와 쪽팔림과 삽질의 역사와

잘 각색된 역경과 고난을 헤쳐나간 영웅적인 나의 살을 동시에 생각할 것이다.

그 당시에 내가 내 삶을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따라서 나의 행동의 지향은 바뀔것이며

그리고 그 이야기중 선택하는 이야기가 결국 나의 삶이 될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어떻게 살았을까? 그리고 어떤 삶을 택하게 될까?


파이 이야기

저자
얀 마텔 지음
출판사
작가정신 | 2013-11-13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2013년 1월 3일 세계적인 감독 이안의 3D영화 국내 전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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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oc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