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정가제 법안이 공포되자마자 부부가 책을 부랴부랴 사 들였다. 이제 책이 거실과 방에 쌓이고 나앉기 시작하는 중이다. 작년에 작심하고 책으로서 가치는 있으되, 다시는 보지 않을 책들을 한꺼번에 중고로 팔아넘겨서 책꽂이에 여유분을 마련했는데 이걸 다시 채우는데 반 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이 많은 책을 쌓아놓고 읽으려니 막막하다. 다 훑어보고 우선순위를 정한 뒤, 목록을 작성하고 독서록을 쓰기로 했다. 요즘 글을 아끼다보니 글발이 줄어든게 이만저만이 아니다. 스무살때 한번 글을 쓰면 A3지 앞뒤로 두 장이상씩 쓰곤했는데 지금은 이런 단문도 헐떡거리고 있으니 말이다.
내가 산 책은 한 분야를 평생 연구한 대가가 쓴 딱딱하기가 화강암같은 교과서류가 끼어있는데 교과서는 좋은 선생님과 함께해야 하는지라 혼자 이걸 읽을 생각을 하니 한숨만 나온다. 이렇게 안읽고 갖다 버린책이 어디 한두권이어야지.
 내가 그동안 읽은 자기계발서류와 일부 경영학관련 책은 거의 팁수준의 아이디어로 장광설을 늘어놓은 인터넷 서점에서 간략한 책소개와 리뷰만 봐도 더 볼 게 없는게 태반이었고, 심지어 서문과 1장에 모든 정보가 나와있어서 돈 아까운경우가 허다하게 많은지라, 경영학 과목을 시험치면서 학교에서 배운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이런 가짜 경영학 책은 누가 가져가지도 않고 삼 년만 지나면 폐지로 전락하게 된다. 종이책 시장에 가뭄이 계속되는지라 요즘엔 책을 한 판만 찍으면 절판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요즘 책을 사는건 일종의 수집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요즘엔 내용만큼이나 글이 좋은 책이 좋다고 생각한다.
여러권의 책 중에 작고하신 이윤기 선생이 번역한 융 박사의 "인간과 상징"이 싸게 나왔길래 이것을 펼쳤다.
잡자마자 독자를 나꿔채서 술술술 이끌어가며 읽히는게 글 읽는 맛이 여느 번역서와는 달랐다.
잘 쓴 국어는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남도 한정식 상을 보는 것처럼 눈이 즐겁고 실제로 포만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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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oc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