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한 살 아래인 제부는 술을 좋아한다. 나를 만나면 반갑게 소주를 한 컵 그득하게 부어서 따라 마시면서 이야길 시작한다. 내가 그렇게 술을 마신다면 만취가 되어서 몸을 가누지도 못하고 기분은 엉망진창이 되기 일쑤지만 제부는 그런일이 없는 모양이다. 우리는 각자 술을 알맞게 따라서 마시고 즐겁게 이야길 나누곤 한다. 주로 인생이 수렁에 빠질때 어떤 계기로 벗어나는지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글을 쓰지도 읽지도 못하는 상태로 6개월도 넘게 지내왔던 것 같다. 일이 많기도 했다. 회사도 맛이가서 정신을 못차리고 있는 중이고, 투자도 요즘 영 신통찮다.

몇 개월전 책방에서 누구를 기다리다가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라는 책을 집어들고 카드를 내밀고 계산하고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잘 읽혀지지 않는다.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은 원하는 것을 얻기위해 행동을 하면 되는 것 아닌가? 근데 왜 그렇게 구구절절이 긴 것인지..

근래에, 답답하다고 많은 지인들에게 털어놓곤 했다. 술을 마시기도 하고 500km나 떨어진 먼 강진의 산자락을 베고 누워보기도 했지만 그때 뿐, 영 신통찮았다.

난 가난한가?
난 가진게 없는 것일까?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해서 방황하는 나의 30대는 이렇게 이울어지고 있는것일까..

집안 책꽂이 5년도 더 묵어있던 말들의 풍경을 빼어들었다.
성공한 사람들의 말들, 외국 석학들의 논리적인 전개와 빼어난 말이 아닌 말 그 자체를 이야기하는 책이다. 그동안 내가 읽고 말하고 쓰던 그 말에 대한 책. 우리는 살아가며 하루에도 수백 수천마디를 이야기하지만 말 자체를 이야기하는 사람은 참으로 드문게 사실이다. 김현의 글은 어떻고, 전혜린의 글은 어떻고, 한자말과 우리말에 서린 깊은 내력이라든가, 발음의 변화등을 말과 글속에 드리워진 문화의 얼개를 꺼내 하나씩 보여준다.

말에 대한 글이라 글도 단정할 뿐더러 뒤에 둘러서있는 지식은 수려하게 화자의 말들을 받쳐준다. 이 매끄러운 말들이 적지않은 책을 부드럽게 계속 읽어 나아가게 한다.
참으로 그렇다. 그동안 내가 읽다가 집어던진 많은 책은 내용이 후지다기 보다 글이 후진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짤막하게 요점만 전달하기 위해 점점 날만 시퍼래지는 내 글은 재미가 사라진지 오래인 듯 하다.
그럴싸하게 멋진 글이 읽지 못하니 글을 쓰지 못하고 글을 쓰지 못하니 생각이 풀리지가 않고 나는 애꿎은 주변사람들에게 지청구를 늘어놓았던 것은 아닌지..

간만에 고종석의 글을 읽고 무엇인가 끄적이고 싶다는 생각이 모처럼 들었다. 무언가 끄적이는 김에 '자소설'도 몇 개 써서 이메일로 날리고 또다른 책을 읽을 궁리를 하는 중이다.

그렇다. 제부가 술을 마셔야 말문이 트이고 기운이 나듯, 나는 책을 읽고 글을 써야 한다. '말들의 풍경'에서 걸어나와 말을 건네는 활자들이 이야기하는게 아무래도 내게는 술 한두잔 마시고 털어놓는 이야기보다 속이 깊다. 앞으로 읽고 쓰기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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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oc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