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면 처음 상경했을때가 생각나곤 한다. 서울 상경 23주년쯤 된 것 같다. 처음 2000년 가을 이맘때쯤 서울에 올라왔을땐데 그땐 왜그랬는지 모르지만 겁도 없었고, 아무런 대책도 없었다.
2학기 강의가 끝나기 전이었는데 잡XXX에 이력서를 하나 올리고는 서초동의 작은 SI회사에 면접을 보고는 합격했다길래 별로 알아보지도 않고 그냥 다니기로 하고 집을 나섰다.
서울에서 묵을데 없으면 같이 지내자는 고등학교 친구 말을 들어뒀던 터라 올라가기 1주전에 전화를 해두고 큰 가방을 들고, 남부터미널에 내려서 3호선으로 내려가서 교대역에서 2호선을 타고, 신림역에 내려서 난곡가는 버스를 타고 친구들 둘이 살던 연립주택 지하방으로 가는길이 지금도 한걸음 한걸음 기억난다.
가보니까 스물 몇살 남자 둘이이 컴컴한 지하방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는 주식도 안할때였고, 여자친구도 없었고, 통장엔 한푼도 없었고, 그냥 학교 빨리 졸업하고 돈벌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지나보니 무작정 상경이라는 것이었는데, 8개월쯤 지나서 신사업을 추진하기위해 영입한 이사가 회사 인원을 빼내서 회사가 둘로 쪼개지게 되었다. 사회초년생 처음부터 못볼꼴을 보고 그 이후로도 별별일을 다 겪었던 것 같다.
정말 계획같은거 없이 닥치는대로 산 것 같다. 그 회사를 나오고도 다음 가을에도 후엔가 월급이 안나와서 신용카드 현금서비스를 받던때가 가장 기억에 떠오른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이제 어떻게 해야하나 하던 막막한 마음이었는데 사장을 노동관청에 신고하고 밀린월급을 받는데 반년은 걸린것 같다. 그 회사를 나오고 다시 취업하고도 결혼 2년차를 찍을때가 인생의 큰 고난이었던 것 같다.
지금 같이 자취를 하던 두 친구 하나는 대기업을 나와 40살에 경찰이 되었고, 다른 한 친구는 그 회사에 남아 본부장을 한다고 한다.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어머니가 늘 말씀하시곤 했다. 천둥벌거숭이가 아내도 만나고 아이둘을 키우며 사람꼴을 갖추는데 십년도 넘게 걸렸구나 싶다. 잃을게 없어서 그렇게 살았을까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하늘의 도움으로 아내를 만날 수 있었고, 좌충우돌하는데도 좋게 봐주신들 분들 덕에 월급 꼬박꼬박 주는 회사로 이직해서 겨우겨우, 그럭저럭 먹고 살 수 있었으니 정말 다행이고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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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oc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