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스위스여행 후기
퇴직날짜가 다가오면서 헤아려보니 13년하고도 10개월을 한 회사에서 일을 했습니다. 10년차를 찍고 10일정도 휴가를 내서 어디든 가겠다고 약속도 받아둔 적이 있었고, 결혼 10주년 이후 어디든 가겠다 마음을 먹었지만 한국내에서 돌아다니기만 했지 외국으로 나가본적은 없었죠. 어딜 가려면 아내의 허락을 받아야 하고, 아이들 일정과 맞춰야 하고, 그러다 주말이 되면 이런저런 일로 흐지부지되는일이 반복되곤 했었습니다. 이번 여행은 최대한 빨리 한국을 떠나는게 목표였습니다. 미루면 아마도 이번 여행을 가겠다고 한 다짐조차 사라질 수 있었으니 첫번째 조건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최대한 빨리 떠날 수 있어야 한다"
퇴사 2주전 처음엔 여행지로 아이슬랜드 자유여행을 가기로 마음먹고 있었고 회사에서 앉아서 아이슬랜드 여행 사이트에서 견적을 내보기도 했었습니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형에게 조언을 구하자 아이슬랜드 여행이 운전으로 다녀야 하고, 혼자가긴 고된곳이라며 스위스를 가라고 거듭 추천해주셨습니다.. 이야길 듣고보니 전화를 끊고나서 자유여행 준비에 2주는 촉박한 시간이고, 게다가 항공편을 갈아타야 하는 아이슬란드 여행을 하나하나 모두 혼자 짜기에는 역부족이란걸 인정하고 스위스 패키지 여행으로 방향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마침 스위스는 코로나 검사 격리가 모두 풀리기 시작했고 인터파크 투어에서 딱 스위스만을 돌아볼 수 있는 상품이 두 개 있었으며, 그중 5월 2일 출발정원을 채운 상품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짧은 고민끝에 1주전 예약금을 결제하고 스위스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40대 중후반의 남자로, 룸 조인이 성립안돼 싱글룸 비용을 추가로 내고 여행을 떠나는 과정은 심리적으로 많은 문턱을 넘어서는 것이었습니다.
패키지여행이 무엇인지는 알았지만 어떻게 진행되는지 전에는 경험해본적이 없었습니다. 퇴사하며 몇개의 심리적 고비를 넘으며 아무런 준비없이 떠난 여행이 성공하려면 부지런히 이 일정에 맞추는게 최선이었습니다. 처음에는 허둥대느라 가방도 놓고나오고 이래저래 적응하려 애를 먹었지만 주변분들이 잘 챙겨주셔서 무사히 잊어버린 물건 없이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일행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여행 사나흘이 지나자 우리는 우리 팀 모두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을정도로 낯이 익게 되었고, 고마운 분들과 맥주며 와인한잔 치즈를 나눠먹을 수 있게 되었죠. 모든 일정 내내 날씨가 좋았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떠나기전 날씨에 대해 걱정하던 내게 해준 아내의 말처럼 여행은 날씨가 좋으면 좋은대로, 나쁘면 나쁜대로 좋았습니다. 취리히 뮌스터호프광장에서 먼저 도착해 일행을 기다리며 마신 핫쵸코는 추적추적 비오는 날이라서 더 좋았고, 청명한 리기산의 탁 트인 전망은 신의 축복과도같은 느낌이었으며, 날씨가 좋지 않았던 융프라우의 눈보라는 얼굴을 사납게 때리는 악천후를 뚫고 나아가는 탐험가와 같은 체험을 선사해 주었습니다. 마테호른을 마주보는 고르너그라트 전망대에서는 짙은 안개로 마테호른의 전경을 볼 수 없었지만, 습기를 머금은 눈으로 천진난만하게 작은 눈사람을 만들어 일행들이 사진을 찍고 놀던 추억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될 것 같습니다. 스위스는 사진기만 들이대고 아무데나 찍어도 모든 곳이 다 그림같았지만 아름다운 도시 루체른과 베른, 만년설이 쌓인 산줄기가 호수에 지던 노을과 푸른하늘과 구름이 거울처럼 비치던 레만호수, 자유시간에 거닐던 골목골목마다의 풍경을 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번 여행은 가이드선생님이 노련한 운영과 해박한 여행지에 대한 지식으로 아무 준비없이간 저조차 여행지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엇습니다. 그리고 일행들 모두 사소한 귀찮음을 마다않고 제 사진을 정말 예쁘게 잘 찍어주신것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묵묵히 시간에 맞춰 우리를 원하는 목적지로 데려다 주시던 운전기사님과, 스위스의 도시와 목가적인 시골, 호수와 산, 협곡과 만년설을 모두 아우르는 일정과 호텔의 퀄리티또한 만족할만 했습니다. 가족과 친구에게도 추천하고싶은 여행이었고 두고두고 인생에 남을 멋진 추억이 되리라 확신합니다.
무엇보다도 동행이었던 모든 스물 아홉 분들이 조금은 정신이 나가있던 저를 잘 챙겨주셔서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모든분들이 오래도록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빕니다. 인연이 닿는다면 어디서든 또 만나뵙게 되겠죠. 이 글로 감사함을 갈음하고 싶습니다.
-여행사게시판에 남긴 후기

리기산
베른광장 또띠아 점심
레만호수 시옹성부근 산책길

 

장원급제 10만포인트를 노리고 쓴 글인데, 역시나 Best상품평에 올랐다

반응형
Posted by coc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