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만하면 한 번씩 기내 승무원 폭행, 기내 난동 같은 사건이 나오곤 한다. 이 사건을 잘 생각해보면, 사회에서 내가 가지는 위계가 작동하지 않는 낯선 공간에서 전과 같은 위계가 지켜지지 않는다는 불만(혹은 불안)이, 직업적인 이유로 하대하기 쉬운 승무원에게 공격적으로 전위되어 비겁하게 표출되는 것이다.

작년 여름, 어느 스터디 모임 뒤풀이에서 옆에 덩치가 산만한 분이 고기를 열심히 굽고 있는데 나는 별 생각 없이 고기를 집어 먹고 있었던 적이 있었다. 옆에 계신 분이 나에게 몇 년생이냐고 묻더니, "197x년생이다"라고 답하니 갑자기 나이도 그리 많지 않은 분이 거기 계신 분들께 일일이 몇 년생인지를 묻고는 나에게 따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 말은 내 귀에 "나이도 어린 XX가 내가 고기 굽는데 넙죽넙죽 집어 먹기나 하고, 싸가지 없는 XX야"라는 폭언으로 들리는 것은 물론이었다. 나는 좀 당황하긴 했지만 웃으며 잘 넘기고, 지인들에게 "투자 스터디에서 내가 이런 취급받는 건 처음이다"라고 종종 이야기하곤했다. 고기 굽는 자리에서 그 형님(?)은 자신의 '나와바리'에 통하는 위계를 내게 들이밀었고, 나는 투자자들 사이에서 여태껏 수평적으로 잘 대접받고 지내온 덕에 무감각해진 어떤 감각을 다시 깨닫게 되었다.

투자를 잘하고 사회적 지위가 높고 돈이 많은 사람이라도, 자신을 모르는 사람들이나 그런 배경과 무관한 공간에서 아무것도 요청하지 않아도 자신이 더 나은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굉장히 무례한 일이다. 특히 초면인 자리에서, 자신이 누군지 알지도 못하는 상대에게 특별 대접을 요구하는 것은 납득시키기도 어렵거니와 상대를 매우 곤란하게 만든다.

그 일이 있은 후, 나는 어떤 자리를 가더라도 의식적으로 가위와 집게를 먼저 집어 들거나 샤브샤브에 재료를 넣는 일에 신경을 쓰게 되었다. 지인이나 친구들은 서비스업 종사자도 아닐뿐더러, 아무도 자신의 위계를 증명할 필요가 없는 상태가, 관계를 가장 안정적이고 효율적으로 만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의식, 무의식중에 다른사람을 업신여기거나 대접을 바라고 있는건 아닐까.

끊임없이 자신을 사랑하는지 확인하려는 사랑은 쉽게 바스라진다.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자신의 위계를 확인하려는 사람은 타인을 질리게 하고, 별로 배울거리가 없거나 재미마저 없다면 그 관계는 빠르게 소진되고 만다.

세상은 그 누구의 위계도 지속해서 돌봐주지 않는다. 돈이 있다가도 없고, 명예도 있다가 사라지는 것이다. 적어도 성숙한 관계에서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은 사람을 보는 기준은 재미가 있거나 유익하거나, 이 두 가지 기준이 적절할 것 같다. 일상에서 대접받으려는 습관이 든 사람은, 어디서든 자신을 대접해주지 않을때 폭력적이 되기 쉽다. 나이들어서 대접받으려면 다른사람에게 친절하고 상냥하게 대하면 된다. 나이가들수록 입은닫고 지갑을 열라고 하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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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oc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