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때 부모님이 종혁이를 돌봐야 하니 오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다. 종민이만 데리고 가는 것으로 말씀드리고 본가인 청주에 다녀왔다.
도착해서 바로 밤잠을 자고, 큰누나에게 연락해서 둘째와 큰누나와 함께 성싱담에 다녀왔다. 청주와 대전의 거리가 대략 40km정도 시간으로는 30분, 도착해서 차를 대고 30분쯤 기다려 성심당 돈까스와, 오므라이스, 파스타를 먹고, 다시 20분간 기다려 성심당 본관에서 빵을 샀다. 기다리는 동안 길로 풍겨나오는 달큰하고 향긋한 버터향이 길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지난번 가족들과 성심당에 방문할 일이 있었는데, 그때는 상대적으로 케잌부띠끄는 줄이 없고 한산했었지만 이번엔 망고시루가 크게 인기를 끌면서 그쪽도 30분은 되어보이는 줄이 늘어서 있었다. 식사-빵-케잌을 모두 해결하려면 대략 두 시간이 걸리는 '순례'라 할 만하다.
 
서울의 큰아들이 자기 것도 챙겨오라는 부탁도 있고해서 이것저것 담아서 쇼핑백을 채웠다. 종민이도 줄 서고 빵을 고르는 것을 힘들다거나 짜증내지 않고 즐거워 하는 것 같았다. 빵을 다 사고 맞은편의 '햄블리'에서 커피를 마셨다. 전에, 방문했을때 사장님은 이 자리의 터줏대감이신 담배가게 할머니의 딸내미였다며 이야길 술술 풀어놓으셨다. 햄블리라는 캐나다 도시에 유학도 다녀온 인테리어 사장님 출신의 카페 주인장이시다. 전에 회사동료의 부고로 이쪽에 들렀다가 커피를 마시면서 이야길 나눈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날은 나오지 않으셨나보다. 커피가 이가격에 팔면 남지 않는다는 말씀을 하셨었다. 2500원 커피 가격에 커피는 과할정도로 좋은 원두를 쓰고 3500에 상하목장 아이스크림을 파는게 경제적인 건 아니라고 말씀하시던 사장님은 역시 좋은 분이시구나. 다시금 전에 이야기한 기억이 떠올랐다. 파는 물건과 가격이 그 가게나 사업체의 마음을 일깨워줄때가 있다. 우리는 그런 마음이 넉넉히 느껴지면 기다림을 감수하고 찾아가는 것이다. 아마 다음에 이 카페에가서 사장님과 몇년전 오픈할적에 왔던 사람이라고 이야기를 하게 될 것 같다.
 
돌아오는 길은 신탄진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대청댐을 왼편에 끼고 문의를 가로질러 청주로 돌아왔다. 이렇게 멋진 드라이브 코스이데도 문의방향에서 청남대 가는길에 비해 크게 알려지지 않은것 같다. 20대중반에 청주와 대전을 출퇴근할때 친구들과 바람쐬러 공연히 오가던 곳이었지만, 그땐 생각도 못했던 둘째아들과 누나와 수다 떨면서 가게 될 지 몰랐다. 이 길을 지나본게 20년은 된 것 같다.
 
차례를 다 지나고 돌아오는 길은 오는 내내 막히고 밖은 숨이 막히도록 더웠다. 중학교 3학년인 종민이와 집에서 자주 같이 있지만 진솔하게 이야기할 시간이 흔치 않았다. 늘 같은 장소에서 비슷한 생활을 반복적으로 하다보니 아빠는 늘 식상한 이야기 하는 사람이고, 아들은 방어적이 되기 마련인것 같다. 여행은 사람의 마음을 열게한다. 같은 차에 타고 종민이 틀어주는 노래도 듣고 아빠 이야기도 하면서 긴 시간이 걸리는 서울길을 느릿느릿 돌아왔다. 첫째 종혁에게 이런저런 교훈적인(?) 이야길 하면 종혁이는 이런 이야길 종민에게도 하냐고 묻곤 했다. 상대방이 귀를 열려면 마음이 열려 있어야 하고 상대방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야 한다. 같은 방향을 보면서 풍경을 보며 단 둘이 대화하는게 가장 효과적인것 같다.
자녀는 자녀이기 때문에 내가 일방적인 이야길 할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가장 소통하기 힘든 사이가 아닐까 싶다.
1. 어떤 일을 하던지 안되는 이유부터 찾지 말고 최대한 이게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가진 여건을 잘 활용해서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해라.
2. 완벽주의는 좋은게 아니다. 처음에 완벽하게 잘 할 수 없으니 마무리를 짓고 보완해라.
3.투자와 소비를 연결지을 수 있는 10대부터 20대까지가 가장 가성비 있는 투자를 할 수 있다. 네가 좋아하는 게임 옷, 신발 모든 취향이 다 투자와 연결된다.
그밖에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 주었다.
 
사춘기가 한참인 아이가 얘길 잘 들었는지, 머릿속에 어딘가 기억될지 알 수 없지만, 나를 잘 알고 사랑하는 사람이 해주는 말은 늘 어디에선가 기억에서 나를 지탱해는 동력이 되곤 했다. 종민에게도 그랬으면 한다.
 
아버지의 고향은 괴산에서도 산골인 항골이다. 소수에서 차가 끊겨서 몇km를 걸어 고개를 넘어 어버지의 고향인 항골로 가면서 삼촌들과 걸어가면 이야기하던 어떤 추석날이 기억난다. 할아버지 슬하의 자손들이 다들 말하는 걸 좋아하고, 목청도 좋아서 다들 모이면 대창마루 밖에서도 누가 무슨이야길 하는지 우렁우렁 울릴정도로 다들 알 수 있을 정도이다. 그렇게 목청껏 이야기를 와글거리면서 넘는 고개너머, 하늘에 큰 보름달이 걸려있었고, 그때는 서늘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그때의 북적이고 부산한 삼촌의 이야기와 커다란 달과 시원한 바람이 추석의 인상이나 기호같은 것이었는데, 이제는 더운 날씨가 끼어들어서 내 경험이 후대의 공감을 일으키진 못하겠구나 싶다. 이제 더운 추석의 시대가 오고 있는건 아닐까. 가까운 미래에는 추석에 차례를 포기한 사람들이 모여 피서를 가게될수도 있을 것 같다. 
 
아마도 종민이는 먼 훗날의 어떤날에 여느 한여름만큼 더운 추석에 아빠와 성심당에 가서 긴 줄을 서서 빵을 사서 엄청 막히는 차안에서 아빠가 무슨 이야길 했더라는 기억이 날 것이다. 아빠가 체험했던 재미있고 즐거운 장소들과 아빠가 겪어서 끔찍했던 체험을 굳이 되밟아 경험하지 않도록 도와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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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oc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