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권유로 파이이야기를 읽게 되었다. 하지만 이 글은 영화 파이이야기와 관련된 글이다.

 

내가 한국은행에 완전히 정착하게 된 이후로 투자에서 조난당하거나 표류했다는 느낌이 들곤 했다.

나는 내 생활이란 바다에서 작은 구명보트에서 투자라는 호랑이와 직장생활을 움켜쥔 내가 같이 표류한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서른살 이후,  삶에서 투자와 업무와 가족이라는 3가지 무게추의 중심을 조금이라도 옮길때마다 내 삶이 출렁거리는 것을 느끼곤 했다.
처음엔 투자에 모든 것을 불살랐다. 나는 회사에서도 주식을 보는 것을 멈추지 않았고, 나의 사수였던 과장님을 주식에 입문시키고 내가 온라인에서 좀 유명해지는 동시에 대학 동문인 사장님 눈밖에 날 정도로 내 사회생활은 엉망이 되어가고 있었다. 어쨌던 주식만 잘하고 회사에선 볼품없는 나에게 아내는 인생을 의탁했고,. 나는 그 때 직장을 명예롭지 못하게 나오게 되었다.


다음엔 가정생활에 무게추를 옮겼다. 예기치않게 빨리 첫 애가 생겼고, 나는 멀찍이 달아나는 동료들의 자산규모를 따라잡기위해 부단히 열심이 돌을 뒤집었다. 너무 돈을 추구했었는지 모르지만, 정규직을 그만두고 실패한 프로젝트 뒷수습에 들어가서 힘겨운 눈물을 삼키기도 했고 어쨌던 이 돈을 투자에 집어넣으면서 종잣돈이 빠르게 불어났다. 하지만 집에서 나는 좋은 아빠는 아니었다. 첫째가 신경이 예민하고 까칠해진 나를 피하는것을 알고 느끼는 것을 아파하면서 육아책과 심리학책을 읽으며 공부를 했다. 아이를 대하면서 내 정신건강이 별로 좋지 않다는 걸 깨닫고, 이걸 수습하면서 갈수록 투자에 들이는 시간을 줄여 나갔다.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다니면서 가족여행도 많이 하고 조금씩 가정생활이 안정되기 시작했다.

다음엔 회사생활에 집중했다. 밸류스타로 갔다가 투자자로 안착하려는 계획이 내 능력부족과 뒤따른 금융위기등으로 수포로 돌아가고 나는 투자에 내 인생을 던질것인가 회사에서 더 머무를 것인가 하는 고민에서 주저하지 않고 회사를 다시 택했다. 20대초반에 사귀어둔 좋은 동료이자 친구덕에 동아줄 하나를 용케 잡을 수 있었고 한두번의 실패끝에 간신히 회사에 안착했고 여러번의 투쟁끝애 그 자리를 지켜낼 수 있었다.

그 사이 2006년 대세상승과 결혼이후의 급격한 환경의 변화의 와중에 태어난 첫째는 초등학교 2학년이 되었고, 2008년의 충격과 함께 내게 찾아온 둘째는 여섯살이 되었다. 집을 샀고, 증자가 한동안 이뤄지지 않았다.

사실 내가 투자에 집중했던 시간의 초반은 회사를 분석하고 글을 쓰고 축적하는 와중이었다면 후반은 그동안 축적한 투자지식과 자산을 인간관계와 돈으로 바꾸던 시기였다.

 

이제 기업도 10년의 세월이 지나 새로운 회사도 많이 생겨났고 산업지형도 적지않이 변화했다.
나도 이제 새로운 모험을 시작할때가 왔거나 할 때가 되어간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대충 따져보니 결혼한 이후론 다섯배이상, 2009년 이후에도 집을 산 이후 매 년 1000~2000씩 갚아나가면서도 순자산이 서너배 불어난 것 같다. 안쓰면 바보라던 2007년경에도 레버리지를 쓰지 않았으니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수준이다.

결혼직전 아내에게 엑셀로 근사하게 복리곡선을 그려보이며 나중에 우리는 큰 부자가 될 것이라고 뻥친 이야기  적이 있는데

이제 그 복리곡선의 각도가 조금씩 가파르게 변하는 지점에 서 있는 중이다.

얼마 전쯤, 아내에게 지금 나를 있게 해준 이 회사를 명예롭게 빠져나오는 시기에 대해서 이야길 해 보았다.

내가 그래도 회사에 애착을 가지는 것은 여전히 내가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파이이야기의 해초섬에 영원히 머무를 수 없는 것처럼 내 생활도 영원히 이곳에 의탁할 수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도 눈을 감으면 내일 할일이 떠오르고,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자부심도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내가 아무런 힘도 없을때 을에게 일방적으로 쫓겨나느니 마느니 밀리고 있을때 내 편에서 작은 발판을 제공해준 분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는 생각 때문에.회사에서 무기력하게 털려나오기보다 내 발로 깔끔하게 모든것을 마무리하고 나올 생각이다.

 

사십을 넘겼고, 지난 10년을 돌아보게 되었다. 거대한 장세의 파고가 지나갔고 많은 사람을 많났고

많은 사람을 쓸어보내고 인생을 뒤바꾸어 놓았다.

내 표류와 모험은 끝난 것일까?

언제쯤 이 모험이 끝날 것인가?

하지만 이 모험(방황)이 내 삶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낙제수준의 수학실력으로 이과를 선택한 것부터 첫 직장부터 청주에서 서울의 지하의 세 평짜리 친구방으로,

현실에서 사이버세상으로  직장생활에서 투자자사회로..

보나마나 능력부족이지만 난 항상 되지도 않는 목표에 나를 집어던지곤 했다. 그리고 늘 힘들어 하고..

가진게 없었기때문에 늘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실패가 일상이던 생활. 어짜피 해도 안되니까 막 살 수 있었던것 같다.

늘 불만을 가지고 뭔가를 하려고 꼼지락거리는게 내 일상이니 이게 사라질 일도 없을 것 같다. 

 

내가 부족하고 미욱하고 그리 가진것도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온것 같다.

늘 열등감에 치이고 스스로를 괴롭히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 검산도해를 헤치고 온 게 어쩔땐 안쓰럽고 대견하기도 하다.

건강상의 문제가 살짝 걸리적 거리게 생겼지만 어쩌면 지난 삶을 한 번 돌아보고 추스리고 가라는 하늘의 뜻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게 된다.

 

그래도 언젠가 이 보트를 내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다시 수 십년 전년을 추억할 것이다.

그 모든게 행복해지기 위함이었고, 그래서 행복졌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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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oc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