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연 책임의 명복을 빕니다
2020년 4월 1일 회사동료 박소연 책임이 세상을 떴습니다.
2011년쯤 처음 입사했을때 긴 치렁치렁한 머리를 했던 키가 훤칠하고 운동선수같은 체구를 가진 20대 아가씨였는데, 지병으로 세상을 뜨고 말았습니다. 회사에서 만나서 알게된지 10년쯤 되었을까요.
제가 힘들게 고민해서 일하는 햄릿 스타일이었다면 박책임은 일을 쉽게 풀어나가는 논리적인 공학도 스타일이었습니다. (실제로 전산과 출신이기도 했죠)
나름 같이 일한 시간이 꽤 되었고, 입이 무겁고 말수가 적은 편이었지만 이야기할때마다 제 썰렁하고 시니컬한 유머에 빵빵 터지곤 하던 나이스한 성격의 박소연 책임. 오래 같이 일한지라 결혼식에도 다녀왔었고, 5년전쯤 심혈관계 질환이 발병해서 회사를 그만두었다가 한번 회사를 그만두고 제 소개로 다시 복귀했었죠. 그후 계속 약을 먹으며 투병했더랍니다. 약간의 언덕배기도 늘 쉬엄쉬엄 걸으며 힘들어 했는데, 동료들과 회식할때 동료들은 그녀를 슬슬 앞서나가서 기다려주곤 했었습니다. 부쩍 올해들어 얼굴이 흙빛으로 바뀌고 힘들어하는 모습이 역력했습니다. 계약이 종료되어 그만두는 날 아침에 가슴을 움켜쥐며 힘들어 하길래 조퇴하라고 이야기 하고 마지막 배웅을 삼성 본관앞에서 저 혼자 했었습니다. 마지막에 흔히 이야기하는 '다음에 봐요' 같은말에 놀러올께요 같은 흔한 인사치레가 없이 끝을 흐리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3월말 계약종료로 회사를 그만둔 바로 다음날 그녀는 세상을 떴습니다. 4월 7일 카카오톡 프로필이 부고를 알리는듯한 메시지로 바뀌어 있는걸 보고는 사무실이 술렁였습니다. 설마설마하며 톡을 보내니 이모님에게 연락을 받았습니다. 코로나 때문엔지 부고도 받지 못하고 장례식장에도 못가고 뒤늦게 버스안에서 안장된 묘 사진을 받았는데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더군요. 그날 밤 잠도 못자고 뒤척이며 눈물을 훔쳐냈습니다.
얼마간 시간이 지난뒤, 가족들과 함께 분당 메모리얼파크에 있는 묘에 다녀왔습니다. 남편분과 환하게 웃고 있는 묘지에 놓여있는 사진을 보니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지금도 회사를 동료들과 밥먹으러 갈때 저 뒤에서 힘들게 따라오고 있을것 같은 느낌이 들곤 합니다. 참 오래 일했는데 막상 같이 찍은 사진한장 남지 않았더군요. 회사동료와 사진찍는일이 그리 익숙하지 않았었지만 그래도 회사다니면서 나름 정들었고 고마운 분들과는 사진을 한장씩 찍곤했었는데, 아쉬운 일이네요.
사십이 되지 않은 너무 이른나이에 갔네요.
모쪼록 좋은곳에서 마음껏 산책하고 운동도 하며 잘 지내길...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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