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포수목원 나들이를 다녀와서 감상기
민병갈이라는 사람을 어렴풋이 알게 된건 작년께였던 것 같다.
천리포수목원, 민병갈, 그 분이 올린 수익에 대해서 알게되고 수목원에 쏟아부은 노력을 알게 되고 나자
나는 천리포수목원이 가보고 싶어졌다.
매일 숲과 산만 찾아다녀서 이젠 좀 질린다고 퉁을 놓던 아내를 졸라서 토요일 아침에 차를 몰고, 항상 그렇듯
주말만 되면 막히는 서해한 고속도로를 달려서 천리포로 들어섰다.
올해 투자수익이 그동한 과문한 실력으로 올린 것 치고는 꽤 괜찮은 편이어서, 철업는 어린이처럼 즐겁고 흥분해서 아내에게 으쓱하면서 자랑을 하곤 했다.
"이렇게만 매년 수익이 나면 금방 000원이 되겠네"
그런데 항상 뒤에 따라오는 그림자같은것이 있었다. 앞으로(아직 머나먼 훗날의 일이겠지만) 많이 벌면 그 다음 어떻게 지켜야 할까 하는 것이었다.
수익 잘 내놓고 박살나는 것도 많이 경험해 본 일이고..
모든게 뜻대로 잘 될때가 가장 불안한 순간이었다는 것은 경험적으로 몸이 기억하는 일이었다.
가령 내가 xx은행에 처음 들어가서 가장 불안했던 것은 누구도 나의 일에 대해서 아무런 간섭도 관여도 책망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모든 사람이 나에게 관심을 가졌고 나는 이 불안한 마음을 에너지로 삼아 죽어라고 일에 매달렸다.
내 불안함과 열등감이라는 원천이, 지금까지도 그 힘이 나를 뒤에서 밀고, 물러서지 못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렇게 투자를 하면서 투자로 나보다 수십배 많은 부를 일군 자산가를 만나면서 최근에야 깨달은 사실이 하나 있었다.
돈을 많이 벌게 되면 그 다음에 무엇이 있는지에 대해서 아직 답을 찾지 못한사람이 생각보다 많아 보인다는 것이다.
그냥 마냥 쌓아놓고 검소하게 사는 분도 계시고, 틈만나면 어디든 여행다니는 분도 계시고, 술과 여인들을 탐하는 분들도 (아마) 적지 않을 것이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순간이 오면 그 무엇이든 할 수 있게 모든 속박이 풀린 다음부터 그 사람의 정말 밑바닥 본질이 드러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어릴적에 억눌렸던 욕구가 터져나오기 때문이다. 그 근본이란 인정받고 싶은 욕구, 억눌린 감정의 발산, 무언가를 갖고 싶은 소유욕에서 오지 않을까..
그 소유의 대상은 뭐든 될 수 있는 것 같다.
천리포 수목원의 민병갈 선생은 나무와 풀로 인생의 어느 정점에 다다른 분이라고 생각이 든다. 그 많은 풀과 나무들이 수목원안에서 뿌리를 내리고 자라기까지 얼마나 많은 애정과 정성이 들었을까..
철마다 피고지는 꽃들, 각자의 층위에서 자기만의 생태를 이어가는 식물들을 그는 평생을 다해서 가꿨고 사랑했다고 한다.
여기서 자라는 나무들은 가지치기를 하지 않아서 수형이 아주 제각각 나무의 본디모습 그대로이다. 처음에 못생겼다고 가지를 치지 않으니 그 형태 그대로 자라서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그 나무의 제 모습이 드러나는 것이란 이야기이다.
투자자로서 그의 행적을 찾아낸 것은 딱 아랫구절 뿐이었다.
제가 읽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목원' 책에는 민병갈이 증권회사에서 일했고 큰손이었다는 얘기만 지나가듯 언급됐습니다. 다른 책을 읽으면서 그가 주식투자에서 일가를 이루었고, 천리포수목원은 주식에서 번 돈으로 일구었음을 알게 됐습니다.
국민투신(현재 프루덴셜자산운용) 최남철 펀드매니저는 1996년에 쌍용투자증권 국제영업부에서 전화를 받습니다. "보유 주식하고 운용스타일이 당신과 비슷한 외국인이 있는데 점심을 함께 하면서 얘기를 나누면 어떨까요?" 그는 젊고 스마트한 외국인을 상상했습니다. 나가보니 백발에 보청기를 낀 70대 노인이었습니다. 노인은 그에게 "안녕하세요"라고 우리말로 인사했죠.
노인이 민병갈이었습니다. 한국은행 에디터로 일하다가 쌍용투자증권 명동지점 2층에 방 한칸 얻어 전업투자자로 독립했습니다. 그는 일주일에 나흘은 주식투자하고 사흘은 수목원을 가꾸며 지냈습니다.
최 펀드매니저와 그의 가족은 여름에 민병갈의 초청으로 천리포수목원에서 일주일을 보냅니다. 민병갈은 투자와 관련한 얘기는 단 한마디도 꺼내지 않습니다. 온통 꽃 풀 나무 이야기만 들려주었습니다. 휴가 마치고 떠나는 최 펀드매니저에게 그가 딱 한마디를 당부합니다.
“미스터 초이, 주식을 너무 가까이에서 보지 마세요.”
아내에게 천리포수목원을 "투자자의 성지"라 이야기하며 여기저기 둘러보았다.
민병갈 선생은 수목원이 300년을 이어갈 선물이라 했다고 했습니다. 300년.. 언젠가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이라는 애니메이션이 떠올랐다.
나무를 심은사람 애니메이션 감상 <a href="http://onaship.com/70119847657">http://onaship.com/70119847657</a>
이 애니메이션의 놀라운점은 이 애니메이션이 모둔 손으로 하나씩 그려졌다는 것인데 내용도 쉬지않고 나무를 심어서 수십년간 가꾼사람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숲의 혜택은 사람과 새, 벌레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난후의 후손들도 함께 누리는 공간이라는 점이 아닐가 싶다.
SKT등을 장기투자하여 수십배의 수익을 얻은 민병갈 장기투자의 귀재라 일컬어지던 그가 마지막으로 투자한 것은 한국의 서해안의 땅에 일군 숲이었고, 그 투자는 아주 성공적이라 생각한다.
그 숲으로 인해 그 분의 생애에선 보다 좋은 사람과의 만남, 다른 분야의 업적을 남기고, 재물을 쌓은 사람이 그토록 바라는 이름을 남기는데도 남부럽지 않은 생애를 살다 간 것이다.
언젠가 강화도 전등사에서 스무평 평 정도 되는 꽃밭이 너무나 잘 가꿔져 있어서 나도 나중에 이런 꽃밭, 정원을 가꿔보고 싶다고 다짐하던 시절이 떠올랐다. 아내는 아마 게으른 내가 그런 곳을 가꿀것 같지 않다고 농을 하곤 하지만..
나는 자주 그런 생각을 하곤 한다.
모든 면에서 남들보다 뒤떨어지던 내가 어찌어찌 지금처럼이라도 살 수 있게 됐던건 내가 장기적으로 좋은 방향으로 가는 길을 찾기위해 책을 놓지않고 쉬엄쉬엄 그 방향으로 엉금엉금 몸으로 기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사람들과 그 길에 대해서 글로 이야길 나누게 되는 순간부터 그 길은 보다 분명하게 모습이 드러난 것 같다. 그 모든것이 과정이 아니었을까.
어릴적 청주의 도서관에서 따뜻한 열람실에서 밖이 어둑어둑해질때까지 책을 뒤적이던 기억,
중학교때쯤에 신문을 뒤적거리며 기사를 읽고 주식란을 보며 시세를 보며 왠지모르게 아수라장 같았던 주식시장을 낯선 눈으로 읽어내려가던 기억
내 글을 읽고 서울에서 찾아온 하이텔 팀장을 만나던 기억부터 내 글을 통해 이뤄진 많은 사람과의 인연.
그리고 나무를 심은 사람이라는 애니메이션을 보고 받은 뭉클한 기억에 이어서 이게 실제로 한국에서도 가능하다는 것을 눈으로 본 시점.
나중에 무엇을 물려줄까 하는 고민은 조금씩 풀어내고 있다.
아마도 이 수목원을 방문한 사람은, 그리고 이런저런 문헌을 찾아본 사람은 느낄 것이다.
사람은 이름을 남기기 위해 벼라별 짓을 다 하지만 진정으로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는 것은 그 사람에게 짧은 시간에 많은 감동을 전해주는 사람 아닐까 싶다.
모짜르트의 음악을 듣거나, 모질게 채이고 김광석의 노래를 듣거나, 지는 저녁녘에 천리포 수목원을 거닐고 떨어지는 석양을 볼때..
나도 많은 돈을 벌게 된다면 그저 세상의 더 많은 식량과 에너지를 소모하는 특권을 누리면서, 넓은 지구위에 고루고루 싸는데 주력하지만은 않게 되리라는 것을 어렴풋이 예감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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