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뤘던 여름여행을 미뤄서 겨울여행 겨울이라 색은 무채색이었네요. 돌아올때 집이 그리워질때쯤 돌아오겠단 생각으로 일주일 넘게 여장을 챙겼습니다.

19일날 지지하던 후보가 이겼다면, 그것이 아니라도 봄이었으면 더 화려했을 여행인데 정치적인 멘붕과 개인사적으로 올해 빡센 여러건의 일을 처리하느라 지친 제 개인적인 보상차원으로 계획했던 여행이었죠.

경주는 2박이나 했는데 그간 몸과 마음이 지칠대로 지쳐서 호텔에서 빈둥대느라고 경주에 가면 꼭 들르는 석굴암, 안압지, 경주박물관을 빼먹었습니다. 그래도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대릉원 일대는 둘러봤습니다.

그래도 황남빵은 챙겨사서 이 여행의 정체성은 먹는쪽으로 결론이 이미 나 있었다는(...)

다음 목적지는 김해, 그리고 봉하마을. 노통의 '작은 비석'앞에는 평일임에도 아직도 희망을 가지려고 애쓰는 사람들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더군요. 마을을 들어서는데 초입부터 부엉이 바위가 멀찍이서 보여서 아.. 여기가 봉하마을이었지.. 라는 생각에 마음이 애틋해지더이다.

애들이 아무 생각없이 묘옆에서 돌아가는 바람개비에서 놀고 있는 걸 보니 애들을 위해서 별로 배려가 없없단 생각으로 일단 공룡박물관이 있는 고성으로 번개처럼 달렸습니다. 진주를 통과해서 통영을 지나쳐서 고성으로.. 오후 4시면 매표가 끝나는 공룡박물관은 정말 외져도 그렇게 외질수 없는 곳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4시면 마감한다고 안 들여보내주는걸 '서울서 왔다. 애들이 실망한다'고 읍소를 해서 들어갔는데 다섯시에 칼같이 마감을 하는데이어서 외부 공원도 다섯시에 나가라고 방송을 해줘서 서둘러 나왔습니다. 다음날의 여수쪽과 비교했을때 좀 아쉬운 부분이었어요.

심심한 공룡박물관 내부는 목포의 자연사박물관과 비교할 때 많이 초라했지만 외부의 공룡 공원은 아이들이 뛰놀기에는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중간에 통영을 가지 못해서 아쉬운 마음을 남해가는길의 충무김밥집에 들러서 대~충 옆동네니까 비슷하겠지? 하며 충무김밥을 비웠네요.

남쪽의 목련은 어느새 꽃눈을 준비하고 있더군요.

우리 가족은 우리는 눈을 몰고 다녔습니다. 성탄절날 화이트크리스마스를 보며 짐을 쌌고, 사흘째 되는 날은 초입에 숲냄새부터 다른 편백휴양림에 묵었는데 밤새 폭설이 내렸더군요. 눈을 뭉쳐보니 눈이 잘 뭉치는 함박눈이더군요. 아이들과 눈사람을 하나 만들고 사진도 찍고눈속에 파뭍혀 남해전체가 교통마비가 되는 것을 구경하고 나왔습니다.

아내는 앞차들이 폭설에 멘붕으로 고갯길에서 어쩔줄 몰라하는 가운데 눈속을 별로 긴장하는 기색도 없이 운전하는 저를 더 신기해 하더군요..

어쨌던 남해에와서 멸치회랑 멸치쌈밤을 먹었습니다. 눈때문에 여행 망했으니 맛집이라도 들르자는 심산이었던 게죠.

남해의 여행은 다랑논이며 보리암이나 그런거 다 포기하고 순천으로 넘어갔습니다.

순천만에 부지런이 달려갔는데 해가 벌써 지더군요. 어짜피 좋은 풍경을 놓친 지각생들에겐 표값도 받지 않더군요. 음..

이 동네 낙조를 보려고 왔는데 해가 이리도 짧아서야... 해질녘 순천만은 참 좋더군요. 여기에는 왜이리 여자-여자-여자분들이 손에 손을 붙잡고 오시는지.. 혹시 남자분들 ASKY라고 집에서 한숨만 쉴게 아니라 순천쪽으로 가시면 여자분들끼리 여행을 참 많이들 오십니다. 밥집, 여행지마다 여자분들 둘이서 손잡고 서로 사진찍어주고 사진찍어달라고 부탁도 많이 하시네요.

하여간 순천만에서 열심이 해지는 사진과 억새사진을 찍었네요. '클량 비장의 맛집'에 나오는 10,000원짜리 불고기 정식을 먹으러 순천역까지 가서 백반을 먹었는데, 갓김치를 먹으니 여기가 전라도구나 하는 느낌이 절로 나더군요. 이런저런 밑반찬의 물량공세에 시각적으로 훌륭했지만 만원짜리 밥은 만원이상의 질이 나오긴 힘들더라구요. 그래도 서울에서 요정도 밥을 먹으려면 아마도 곱절은 줘야했을테니 가성비는 갑인것은 인정.(충청도 태생인 제게는 서울이 비싼겁니다)

순천만 낙조를 보고 이제 낙안읍성쪽 휴양림으로 달렸습니다. 전날 폭설의 여파로 고개를 두개 넘는데 날도 추워지고 녹았던 눈이 살짝 얼어서 심리적으로 좀 위축돼서 힘들었습니다.

여튼 휴양림에서 발을 디디는 순간 눈길운전의 피로감으로 떡실신, 눈을 떠보니 나음날 아침이었습니다.

낙안읍성을 둘러보고, 읍성안에 있는 겨우 6000원자리 밥에 김치가 세가지 나오는것에 진정한 전라도 음식에 대한 경외감을 느꼈습니다. 만원짜리 밥보다 6000원짜리 밥의 김치 세가지 그리고 정수기 물이 아니고 옥수수차나 보리차가 끓여서 따뜻하게 나와서 너무 좋았습니다. 이게 남도의 음식을 대하는 마음이랄까 그런게 느껴지더군요. 아.. 이쪽의 소박함은 이정도..라는 생각.

뒤에 있는 주인장과 주방 아줌마들이 이야기에서 전라도말이 판소리의 운이 느껴져서 음악처럼 들리더군요. 낙안읍성이 한국 판소리의 성지라고 하던데 괴연!

돌다리, 절의 절집이며 뒷간이 일품이었던 선암사..를 둘러보고 이제 지리산권으로 넘어가보자고 구례로 달렸습니다. 기름을 벌써 두 번을 꽉 채웠고 아이들은 눈길진창에서 양말을 다 버리고, 옷도 거의 흙탕물에 거지꼴이 되어 갑니다.

구례를 찍고 화엄사에 갈까 하다가 요기를 하려고 화개장터를 향해 갔습니다. 지나다보니 이동네는 다슬기나 참게탕이나 은어를 먹어야한다는 결론이 나더군요. 참게탕으로 유명하단 집을 서둘러 찾아서 참게탕 흡입..

참게탕 맛있습니다. 첫 수저가 들어가자마자 사진찍는것도 잊고 흡입해버렸습니다.

근데 마음은 화개, 쌍계사 초입에서 멈춰버리네요. 더 들러서 지리산권에서 화엄사 절집뒤에 있는 저를 기억해줄리는 없겠지만 전에 신세진적 있는 구층암에 들러서 차도 청해마시고 그러고 싶었는데..

집에 돌아가고 싶더군요. 청주 본가까지 거리를 보니 대충 세 시간거리 서울이라면 하룻밤을 더 묵었을테지만 문득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긴 여행의 끝은 역시 돌아가는 것, 집만큼 좋은곳은 없다는 것을 느낄때쯤 돌아가는게 좋은것 같습니다.

청주로 가는길은 다시 폭설이 내렸습니다.

눈과 함께 시작되어 눈과 함께 끝난 가족여행은 여기까지로 마무리 했습니다.

눈쌓인 남해섬에서 보는 쪽빛바다와 순천에서 본 석양과 새들, 남루한 여행의 끝자락에 본 섬진강과 참게탕..

이게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의 풍경인것 같습니다.

앞으로 전라도쪽을 더 여행해야겠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뭐랄까 여행객을 위한 배려랄까 전남에서 발간한 여행지도나 국립휴양림에서 나눠주는 지도 하나만 봐도 뭔가 다르네요. 경상도가 '산업화의 성지'라면 전라도가 '민주화의 성지'인 탓에 부족한 산업기반을 여행으로 메울려는 고심이 보이기도 하고..

어쩌면 때묻지 않은 자연풍광이며, 다채로운 음식문화 암산과 육산, 갯벌과 바다.. 앞으로 더 무궁무진한 여행수요를 창출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처음엔 해외여행을 가겠다 생각하다 성수기라 여의치가 않아서 남도쪽으로 방향을 틀었는데 정말 볼거리 맛볼거리가 무궁무진합니다. 아직도 가보고 싶은곳이 많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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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oc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