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굴암과 하와이에서
석굴암 본존불을 친견한적 있었다. 2003년에 서울에 직장생활을 무렵이었는데, 고등학교 친구인 승우와 감포 몽돌해변에서 차를대고 차가운 겨울바람으로 흔들리는 차안에서 쪽잠을 잤다. 잠을 제대로 들 수 없었던지라 서둘러 해도 뜨기 전에 석굴암을 보러 토함산에 갔다.
새벽 일곱시가 되기도 전에 석굴암에 도착하니 보살님 한 분이 앉아계신다. 마침 주변에 아무도 없길래 보살님과 이야길 하게 되었다. 이렇게 이른시간에 이곳에서 계시다니 절에서 지내시는 모양이라고 말을 건냈다. 보살님은 아이들은 이제 다 키워서 각자 살고 있다고 했다. 유리창 앞에서 한참을 본존불을 바라보다가 보살님께 부탁해서 유리문 안으로 들어가서 본존불을 직접 볼 수 있었다. 거대하고 장엄한 본존불의 입술은 피가 도는듯 했다.
"아이들은 다 커서 이제 다 각자 살아요 이제 다 컸으니 둥지를 뜨는거죠"
결혼 십주년에 하와이에 갔다. 여행 다음날 일정으로 빅아일랜드를 가게 됐는데 나이가 중년에서 노년으로 접어드는 가이드 분과 함께 빅아일랜드 화산지형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구경을 했다. 가이드는 돌아오는 버스에서 마이크를 잡더니 하와이 해외여행의 최고 황금기는 88년이었는데 자기는 신발바닥이 녹을것 같은 뜨거운 용암벌에서도 열심이 일했다고, 이제는 젊은이들은 다 도시로 떠나고 저녁때 친구와 맥주나 마시며 소일한다고 자기는 그것으로 행복하노라고 이야기 했다. 조금은 쓸쓸한 느낌이 드는 독백이었다.
"그때는 열심히 일했었어요 땅 아래 용암이 흐르는 뜨거운 용암벌 위에서 무서운줄 모르고 열심이 여행객들과 돌아다녔어요."
빅아일랜드에서 호놀룰루로 돌아온 다음날은 내내 비가 왔다. 드라이브를 하겠다며 어떤 해변을 갔는데 시커멓게 흐리고 비가오는 파도가 거세게 치는 날씨에 서퍼들은 파도속으로 헤엄쳐 들어가서 파도를 타거나 중심을 잃고 바다에 다시 빠지면서 놀고 있었다.
인생은 파도타기하는 것 같다고 생각을 했다. 삶을 지키기 위해서 견고한 성을 쌓고 외부의 힘에 저항하는 사람들도 있고, 부서지고 물에 빠지지만 한번 끝내주는 파도를 타기 위해서 비바람이 부는 바다에서 열심히 바다를 향해 헤엄치는 사람도 있다.
허무주의라고 할 수 있다. 그래도 열심이 살아봐서야 인생이 허무한 것임을 아는것 같다. '끝까지 다 가봤더니, 아무것도 없었어요. 하얗게 다 타버렸어요' 하고 말이다. 후회뿐인 인생은 아니게 될 것이다. 무엇을 위해서라는 고승의 문답처럼 늘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해야하는지 왜 이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는지 자각하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무엇을 가지기 위해서 노력하다 내 인생이 그것으로 오로지 그것으로 가득 차서 끝나버리게 된다. 인생이 결핍으로 가득찬 것을 채우기 위한 삶이 되면 불행해진다.
무엇이든 할 수 있도록, 늘 어디든 떠날 수 있도록, 무엇이든 될 수 있도록 머릿속과 마음을 가볍게 유지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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