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날짜가 다가오면서 열심이 면접을 보러 다녔다. 가장 고통스러웠던 순간은 이력서를 보면서 자기소개 1분을 준비하는 순간들이었다. 그동안 나는 나를 굳이 소개할 필요가 없는 환경에서 살아왔다. 회사에서도, 투자판에서도 그랬다. 내 이력서는 생각보다 괜찮은 편이어서 면접을 여러군데 볼 수 있었다. 결국 지인들 인맥을 동원하고 나서 중앙대병원에서 프로젝트 담당 영업대표였던 이사님이 소개해주신 회사로 가기로 마음먹었다. 결국 다시 DW를 해야했고 이쪽의 부담감을 안게 되었다.

면접볼때 나를 소개하기에 앞서 나는 내가 누구이고 앞으로 어떤 삶을 살겠다는 약속을 스스로 해야 했다. 어떤 이는 내가 IT업계답지 않게 한곳에서 십 년 넘게 있었다는 사실에 가산점을 주었고, 어떤이는 연차에 비해 별로라고 면접후기 평을 해주셨다. 헤아려보니 13년하고도 10개월을 한국은행에서 일을 했다. 10년차를 찍고 10일정도 휴가를 내서 어디든 가겠다고 약속도 받아둔 적이 있었고, 마음을 먹었지만 한국내에서 돌아다니기만 했지 외국으로 나가본적은 없었다. 어딜 가려면 아내의 허락을 받아야 하고, 아이들 일정과 맞춰야 하고, 그러다 주말이 되면 이런저런 일로 늦어버리길 반복했다. 이번 여행은 최대한 빨리 한국을 떠나는게 목표였다. 주식시장에서도 회사에서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조건은 단 하나였다. 

최대한 빨리 떠날 수 있어야 한다.

퇴사 2주전 처음엔 여행지로 아이슬랜드로 가기로 마음먹고 있었고 회사에서 앉아서 아이슬랜드 여행 사이트에서 견적을 내보기도 했다. 아내는 안가고 자신을 원망 말라며 두말않고 가라고 했다. 무트로형에게 전화를 했다. 무트로형은 아이슬랜드 여행이 운전으로 다녀야 하고, 혼자가긴 고된곳이라며 스위스를 가라고 거듭 추천해주셨다. 전화를 끊고나서 자유여행 준비에 2주는 촉박한 시간이고, 게다가 항공편을 갈아타야 하는 아이슬란드 여행을 하나하나 모두 혼자 짜기에는 역부족이란걸 인정하고 스위스 패키지 여행으로 방향을 바꿨다. 1주전 예약금을 결제하고 스위스로 떠나기로 했다.

구석에서 쳐박혀있던 여권을 이메일로 보내고, 백신접종증명서도 발급받고, 스위스 여행에 필요한 어댑터나 보조배터리를 주문하면서 일주일간 준비했다. 가장 고민했던 것은 통신문제였다. 로밍을 쓸 것이냐, 현지 통신사 유심칩을 쓸 것이냐는 고민을(사실상 지나고 보니 가장 쓸모없던 고민)하고 내가 어디로 여행을 가게 되는지에 대해선 사실 무지한 채로 떠나게 되었다. 퇴사 쫑파티를 하고 투자동료들과 후배들의 쫑파티를 받으며 종종 눈물을 뿌려대며 시간이 가고 있었다. 주말내내 장을 보고 짐을 싸면서도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일단 스위스라는 여행지에 대한 정보도 확신도 없는채로  나는 점점 회사와 멀어지고 후회도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음회사에 대한 긴장감을 잠시 내려놓고 스위스로 가고 있었다. 새벽에 아내가 홍대 공항철도까지 차로 태워다 주고 스위스 패키지 여행이 시작 되었다. 원화 현찰을 준비하지 않아서 공항철도 표를 끊을 수가 없었지만 ATM에서 현찰을 찾아 표를 끊어서 플랫폼에 갔어도 공항철도 도착시간에서 그리 늦지 않을 수 있었다. 

공항 1터미널에서 가이드님을 만나서 수신기 마스크와 손소독제, 물티슈를 건네받았다. 좌석을 배정받고, 짐을 부치고, 출국에서 짐검사를 하고 분명 전에 해본것들이지만 너무 오랜만이라 어리둥절 했다.  그렇게 비행기를 타고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했다. 비행기는 우크라이나 전쟁때문에 러시아 항로를 이용하지 못해 흑해 남쪽으로 돌아들어가서 두시간이 더 소요되었다. 

도착하기 직전 공항에서 인수받은 보다폰 유심칩을 끼우다가 유심칩이 튕겨져 날아가버렸다. 비행기좌석 사이로 끼어든 모양인데 찾을 수 없었고, 일행도 있었던지라 포히고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오자마자 기분이 최악이었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일행과버스를 타고 바덴바덴 숙소로 돌아가서 고민하다가 한국 유플러스 유심칩을 끼웠다. 독일측 통신사에서 내 전화기를 감지하고 한국측에서 로밍안내문을 문자로 날려줬다. 한국쪽 상담원과 통화하고 7일간 3.5G 데이터, 통화료 무제한 상품에 가입했다. 여행에서 온 첫 위기를 수습하고 바라본 독일의 들판은 유채꽃이 한창이었다. 너른 들판과 숲이 인상적이었다.

호텔에 도착해서 방을 배정받고 방에 가서 창밖에 나서 보니 이곳은 새가 많이 사는 곳이었다. 온갖 새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독일씩이나 왔는데 맥주한잔 안할 수 없어서 바에 내려와서 가이드님의 도움으로 맥주와 안주를 시켜 혼자 마실 수 있었다. 혼자 왔다며 방을 배정받은 여자분 두 분이 옆에 앉아서 어떤 사연으로 혼자 왔냐며 물어보시기에 이야길 하고 햄버거와 감튀를 먹고 방에 올라왔다. 아래 사진은 루체른의 2일차 일정의 일부를 올린 것이다.

독일 길가의 봄녘들판
첫날의 숙소 레오나르도 호텔
혼자 호텔 바에 앉아 궁상을 떨며 열심이 마신 맥주와 안주로 먹은 햄버거와 감튀
호텔 뒤뜰 참 예쁙 가꿔놓은 곳이었는데 바덴바덴은 별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루체른의 시가지
루이 16세를 지키다 전사한 스위스 용병을 기리기 위한 빈자의 사자상
루체른의 목조다리 카펠교
카펠교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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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oc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