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족지연'은 측정이나 실험으로 관찰할 수 있는 인간의 행동특성이다. 초기의 실험은 아래와 같다.

1. 월터 미셸의 '스탠퍼드 마시멜로 실험' (1960년대 후반 ~ 1970년대 초반)

스탠퍼드 대학교의 심리학자 월터 미셸(Walter Mischel)과 그의 연구팀은 '만족지연' 능력을 측정하기 위한 실험을 실시했다.

  • 실험 설계: 4-5세 아동을 방에 혼자 있게 한 다음, 눈앞에 마시멜로(또는 쿠키, 프레첼 등 아이가 좋아하는 간식) 하나를 놓고, 그리고 연구자는 아이에게 다음의 선택 중 하나를 하게 했다. "너는 지금 이 마시멜로를 먹어도 돼 그런데 내가15분 후에 돌아올 때까지 먹지 않고 기다리면 마시멜로를 하나 더 줄게"
  • 일부 아이들은 연구자가 나가자마자 마시멜로를 먹었지만, 다른 아이들은 다양한 전략(눈을 가리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냄새를 맡는 등)을 사용하여 유혹을 참고 기다렸다 기다린 시간은 아이들마다 작지 않은 차이를 보였다.
  • 장기 추적 연구 결과, 미셸은 이 아이들을 수십 년간 추적 관찰했다. 어린 시절 마시멜로를 먹지 않고 더 오래 기다렸던 아이들이 청소년기에 더 높은 SAT(미국 대학입학 자격시험) 점수를 받았으며, 스트레스 상황에 더 잘 대처하는데에다, 비만 지수(BMI)가 낮고, 약물 남용 문제가 적은 경향을 보인다고 발표했다. 이는 만족지연 능력이 학업 성취, 사회성, 건강 등 삶의 전반적인 성공과 높은 관련성이 있다는 증거로 제시됐으며 많은 투자책과 자기계발서적에 즐겨 인용되는 연구로 남았다.

이 연구 결과는 개인의 '의지력'과 '자제력'이 성공의 핵심 요인이라는 믿음을 대중적으로 확산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기질이 중요하다는건 이론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개인의 의지력과 자제력은 어떻게 형성되는 것일까.

2. 최신 재현 연구의 등장 (2018년)

2018년에는 수십 년간 정설로 받아들여지던 마시멜로 테스트의 결론에 중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연구가 발표되었다.

  • 타일러 와츠(Tyler Watts) 등의 재현 연구: 뉴욕 대학교와 캘리포니아 대학교 어바인 공동 연구팀은 월터 미셸의 연구보다 훨씬 더 크고 다양한 인구 집단(표본 크기 10배 이상, 다양한 인종 및 사회경제적 배경 포함)을 대상으로 유사한 실험을 실시했다.
  • 이 연구에서도 마시멜로를 오래 기다린 아이들이 학업 성취도가 더 높은 경향을 관찰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상관관계는 초기연구의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개개인의 만족지연에 능력에 초점을 맞춘 이 연구에서 정작 더 중요한 발견은, 아이의 '가정 환경'과 '사회경제적 지위(Socioeconomic Status, SES)'와 같은 배경 변수를 통제하자, 만족지연 능력과 미래 학업 성취도 사이의 상관관계가 거의 사라지거나 통계적으로 유의미하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즉, 부모의 교육 수준이나 소득이 높은 가정의 아이들이 마시멜로를 더 잘 참는 경향이 발견된 것이다. 바로 가정 환경이 아이의 미래 학업 성취에 더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점이었다.

'만족지연'에 대한 초기 연구는 개인의 성공은 얼마나 인내와 참을성을 갖춘 사람들이 성공할 것인가 개개인의 성향이나 기질에 초점을 맞춘 것이었다. 즉 눈앞의 마시멜로를 참아낸 아이가 더 나은 미래를 맞이했다는 결론은, 성공이 타고난 기질, 즉 의지력과 자제력이 성공을 좌우한다는 대중적인 믿음을 낳았지만, 이 해석은 중요한 변수를 놓친 예측 오류에 가까웠다고 볼 수 있다.

최근의 연구들은 아이의 선택이 의지력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이 처한 환경에 대한 합리적 의사결정일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약속이 지켜지는 안정적인 환경의 아이는 기다림이 더 큰 보상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학습했기에 수월하게 기다림을 선택한 반면, 미래가 불확실하고 약속이 잘 지켜지지 않는 환경을 경험한 아이는 눈앞의 보상을 즉시 취하는것을 가장 합리적인 생존 전략으로 인식한 것이다. 즉, 기다리지 못하는 것은 개인의 빈약한 의지때문만이 아닌, 불확실한 환경을 대하는 태도이자 나름의 리스크 관리라고 할 수 있을것이다.


만족지연에 대한 두 번의 연구는 주식 투자, 특히 불확실성과 장기 투자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주식 시장은 본질적으로 불확실한 환경이다. 성공적인 장기 투자는 불굴의 의지력으로 시장의 변동성을 참아내는 과정이 아니다. 오히려 시장의 불확실성을 당연한 조건으로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예측 오류의 위험을 최소화하는 자신만의 안정적인 환경(내지는 구조)을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리스크 관리는 이 환경 구축의 핵심적인 요소이다. 자산 배분분산 투자는 특정 자산이나 시장이 약속을 어길 가능성, 즉 예측이 빗나갈 위험에 대비하고, 만기가 다른 자산, 상관관계가 반대인 자산으로 포트폴리오를 분산해서 지속가능한 꾸준한 복리수익을 추구하는 리밸런싱에 대비하는 장치라 할 수 있다. 정기적인 분할 매수는 즉흥적인 판단과 한번의 크나큰 예측 오류가 포트폴리오를 망가뜨릴 여지를 줄여주는 시스템인 것이다. 시장이 좋을 때나 나쁠 때나 꾸준히 투자를 이어가는 환경을 스스로 설계함으로써, 의지력에 기댈 필요 없이 장기적 보상을 기다릴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세상의 불확실성이 심화되면서, 이러한 환경 구축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지정학적 리스크, 기술의 급격한 변화, 예측 불가능한 전염병 등은 미래 보상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있다. 이는 투자자가 마주한 환경이 더욱 예측 불가능하고 변덕스러워졌을 가능성을 의미한다. 지금 상황은 자고나면 점점 세상이 평화로와지고 기술이 인류를 진보시킨다는 패러다임은 점차 종언을 고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단기적 변동에 반응하고 장기 계획을 포기하려는 충동은 더욱 강해질 수 있다. 불확실한 미래의 두 번째 마시멜로보다, 당장의 작은 이익이나 손실 회피가 더 합리적인 선택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따라서 심화된 불확실성에 대한 전략은 정교한 에측이나 미래를 내다보는 마법의 수정구슬을 가지는게 아니다. 예측의 무용함을 인정하고, 어떤 충격에도 흔들리지 않는 더욱 견고한 개인의 투자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첫째, 안전 마진(Margin of Safety)을 확보한다. 모든 자산을 시장에 던져두는 대신, 일정 비율의 현금을 보유하거나 변동성이 낮은 안전자산을 포함하여 예상치 못한 충격에 대비한 완충지대를 마련해야 한다. 이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헐값에 자산을 매도하지 않고 버틸 수 있게 하는 생존 장치를 강구해야 한다.

둘째, 반취약성(Antifragility)을 시스템에 도입한다. 단순히 충격에 버티는 것에 그치지 않고, 혼란과 변동성을 통해 오히려 이득을 얻을 수 있는 구조를 구축해야 한다. 주식과 반대방향으로 움직이는 자산, 가령 변동성이 적고 정기적으로 배당이 나오는 미국채나, 장기 배당수요로 인해 변동성이 적은 배당주를 편입해서 폭락시나 정기적인 리밸런싱으로 채권과 주식의 비중을 조절하는 것이다. 시장이 급락할 때 상대적으로 비중이 높아진 안전자산을 팔아 급락한 위험자산을 매수하는 행위는, 시장의 변동성을 장기 수익률을 높이는 기회로 활용하려는 전략으로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세상이 불확실해질수록 투자자의 시선은 외부의 예측에서 내부 시스템의 견고함으로 옮겨와야 한다. 시장을 예측하려는 근자감을 버리고, 어떤 불확실성 속에서도 나의 원칙과 시스템이 나를 지켜줄 것이라는 신뢰 환경을 구축하는 것. 그것이 예측 오류의 위험을 관리하고 장기적인 성공에 이르는 길이 아닐까 싶다.

참고 자료:

  • 만족지연에 대한 초기연구
  • 만족지연에 관한 후속연구
    • Watts, T. W., Duncan, G. J., & Quan, H. (2018). Revisiting the Marshmallow Test: A Conceptual Replication Investigating Links Between Early Delay of Gratification and Later Outcomes. Psychological Science, 29(7), 1159-1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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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oc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