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본가에 다녀왔다
청주에 간 김에 고딩친구 둘을 한명씩 보고 왔다. 한 녀석은 대기업에 다니다 사십에 경찰공무원이 되었고, 한 놈은 병원 세탁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경찰친구를 찾아 현대미술관청주수장고에 갔다. 너른 광장에서 만난 친구는 둘째 애 자전거를 처음 가르치는 날이라고 했다. 아이가 뒤뚱뒤뚱 거리며 자전거를 타고 광장을 슬슬 도는 새 우리는 광장이 잘 내다보이는 벤치에 앉아 맥주를 까며 이야길 했다. 2000년쯤 그 친구가 살던 난곡의 지하아파트에 더부살이를 한 적 있었다. 낮에도 볕이 들지 않았고, 냉장고에는 곰팡이가 슬어있는 반찬과 찬거리가 있었고, 화장실에는 세면대도 없어서 대야로 물을 받아서 살던 집이었다.
둘째애는 자전거를 타다가 자주 넘어지곤 했다. 그럴때마다 친구는 슬슬 쫓아가서 아이 자전거를 잡아서 밀어주고 아이가 자전거 페달을 밟으면 돌아와서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 아이가 생겼다고 했다. 첫애는 회사생활에 바빠서 친해질 기회가 없었지만 둘째는 자신을 잘 따른다며 우리 애들 안부를 물었다. 이제 우리 애들도 중3에 초등학교 6학년이다. 첫애를 키우며 나도 아빠가 되기 위해 작지않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했다. 둘째가 약시라는걸 알고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모른다. 우리 친구들을 만날때면 여자이야기에 시간가는줄을 몰랐다. 취업과 결혼을 지나 이제 앞으로 살아갈날은 나에겐 아직도 넘어가야하는 몇굽이 고개를 바라보며 얼마나 더 가야하는지 어림할적에 그 친구는 고개에서 내려와버린 것이다.
내수에 있는 친구도 만났다. 세탁공장을 하고 있는데 직원들 다섯을 두고 한다고 했다. 예나지금이나 정말 부지런히 사는 친구였다. 갓 스무살이 되었을때부터 우리집 부근의 자판기에 음료와 커피를 혼자 채우고 다니던 친구였는데 그때부터 철이 들어서 우리 친구주위에선 가장 어른이었다. 공장에 들어가니 건조기가 뿜어대는 열기가 느껴졌다. 수북하게 쌓인 세탁물을 캐리어에 넣는다며 조금만 기다리라 했다. 밥을 먹을까 했지만 물을마시며 이야길 하는데 멀리 개구리 소리가 끼어든다.
그냥 요즘 사는 이런저런 이야길 했지만 가장 마지막에 남는 것은 자전거를 밀어주며 슬슬 걸어오던 친구의 모습과 나를 보며 반갑게 활짝 웃는 친구의 얼굴, 세탁공장의 석유냄새와 서쪽에 떨어지는 저녁노을이 기억에 남는다.
이제 아이들도 사춘기에 접어들고 회사에서도 이제 이룰만큼 이룬 평범한 친구 나도 그리 특별한 사람은 아닌데 말이다.
늘 몸을 부지런이 움직여야 밥을 먹고 살 수 있는친구, 회사와 집과 모임에서 한국경제와 미국의 이자율을 걱정하는 나의 생활.
나는 실향민이다. 눈을 감으면 좁은 고향에서 도토리아웅다웅하다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떠난 고향이 그리워진다.
오랜만에 보는 청주 북서쪽들녘의 노을이 잊혀지지 않을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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