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생활/여행

7년만에 지리산-화엄사행

cocon 2015. 2. 23. 03:40

결혼초부터 아내에게 전부터 몸도 찌뿌듯한데 온천에나 가면 어떻겠냐고 이야길 하곤 했다. 반응이 신통찮았던 것은 아내가 공중목욕탕을 그닥 반기질 않았을뿐더러 어린 사내아이들을 둘씩이나 데리고 가는데 대한 불편함 따위가 머릿속에 자리잡고 있었던 것 같다.

아내도 안쓰던 전기장판을 쓰고 따뜻한 방에서 찜질하는 맛을 알게 된지라, 온천이나 가자는 말에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이천의 테르메덴은 수도권의 엄청난 인파로 북적댈까 싶어 기피하고, 전통의 온천 휴양지 수안보는 시설이 노후하거나 연계관광이 빈약하지 않을까(내가 경험한 산 중에서도 험하기가 손꼽히는 월악산의 지명도가 아내에겐 안습이다) 지리산에 그럭저럭한 온천이 있다는 이야길 듣고 아내에게 작년말-연초에 이야길 했었는데, 방이 예약이 그득해서 그 긴 휴일을 집에서 뒹굴거리며 보내야 했다. 2015년은 설 연휴가 5일이나 되는지라 연휴때 가자고 이야기하니 토요일 숙박이 예약되고 처가의 양해도 구해서 설연휴의 말미에 다녀오게 되었다.

설 연휴 전 날에 일찍 출발해서 청주에서 이틀을 묵고, 추석 다음날에 호남고속도를 타고 전라도로 향했다. 하늘은 맑고 푸르고 2월말 답지 않게 포근한 날씨였다. 나는 원래 여행할때 세세하게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어짜피 여행가서 계획대로 다니는 것도 아닌데다 주요 목적지만 잡아놓고 세부일정은 그냥 그때그때 아내와 이야기해서 정하고 검색해서 해결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아내는 이런 결정의 주도권은 내게 위임해서 나는 가이드 겸 운전기사 노릇을 하고 아내와 아이들은 여행객이 되는 모양새이다.

상경하는 차량으로 빼곡한 상행선옆을 신나게 달리다가 배도 출출하던 차에 치즈로 유명한 고장 임실이라는 표지판이 보이길래 래 아내에겐 "임실이네 저기가 치즈가 유명하대. 저기가서 피자나 뭐 그런거나 먹어볼까?"하고 말을 하면서 이미 무작정 임실로 빠져나갔다. 나들문-톨게이트-을 벗어나 조금만 임실방향으로 가자마자 오른쪽에 첫눈에 보이는 임실치즈테마파크로 향했다. 멀리서 보이는 노릇노릇한 치즈조형물이며, 테마파크 입구의 치즈순두부집이 이채로왔다. 설연휴 마지막날이라 일부 휴장 상태이긴 했지만 일단 애들은 알록달록한 테마파크의 건물앞에 다다르자마자마자 제세상을 만난 것 마냥 신나게 뛰어다녔다.
 치즈만들기체험은 어린이 소풍이나 소셜커머스의 상품란에도 오르리는 단골메뉴였던 것 같다. 역시 아이들은 부석사 각황전이이나 사사자삼층석탑이나 각황전앞의 우람한 석등 같은 천년에서 수백년묵은 고고한 국보급 문화유산에 어떤 의미를 찾기보다는 내 눈앞에서 좍좍 늘어나는 스트링치즈와 모짜렐라치즈에 더해 초딩입맛에 맞춤한 피자와 스파게티에 꽂히게 마련이다.
 치즈로 그득한 피자와 스파게티, 돈까스로 배를 채우고 아이들과 함께 만든 모짜렐라 스트링 치즈를 씹으며 지리산온천에 다다랐다. 지리산온천호텔의 외양은 남대문모양 부조로 멋을내다 실패한 외양이었는데, 참으로 들인 공에 비해 미감이 형편없는지라 아내와 나는 동시에 푸헛~웃음이 터져나왔다. 정초에 목욕하러 온 전국 각지의 사람들로 거대한 욕탕은 와글와글 북적북적 자리잡기도 힘든통에 아이들을 씻기고 찜질방에서 아내와 재회해서 계란을 깨먹고 찜질방의 사우나에도 몸을 눕혀보았다.
 피가 잘 돌아 몸이 더운 종혁이는 더위에 지쳐 괴로와했지만 종민이는 아주 제법 즐기는 모양새여서 애엄마와 나는 '체질이네 체질이여~'를 연발했다.
  이제 찜질방 체험도 이곳의 마감시간이 여덟시라 한시간남짓 남은 시간을 고려해서 아직은 쌀쌀한 노천탕으로 나섰다. 밖에선 싼티가 풀풀 흘렀지만 노천탕은 여지껏 가봤던 어떤 노천탕에 못지않게 신경쓴 흔적이 역력했다. 십이지신상조각에서 물이 쏟아져나오는 것으로보아 탕이 열 두개정도 마련되어 있던 것 같았다. 가족들이 찜질방가운을 입고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도란도란 이야길 나누고 있었다. 종혁과 종민, 아내도 북적북적대고 정신없던 욕실의 비호감과는 달리 이곳은 아주 즐거워했다. 종민군은 모든 탕에 몸을 담그려는 열성을 보여주었다. 저녁으로 간단하게 추어탕과 돼지고기주물럭을 먹고 잠자리에 들었다.

이틑날은 아홉시쯤 일어났다. 비가 조금씩 흩뿌려지고 있었고 지리산 자락은 구름이 드나들고 있었다. 일기예보로는 하루종일 비가 온다고 했으니 지리산 노고단에 갈지 말지 아내와 결정해야 했다. 일단은 화엄사에 들러서 그때 상황을 보고 결정하자고 하고 화엄사로 향했다. 화엄사는 내게 각별한 곳이다. 한국은행에 들어오기 직전에 망해가는 프로젝트에 명분으로 투입됐던 티브로드에서 이런저런 일을 뒤집어 쓰고 튕겨나온다음, 아내에게 며칠 휴가를 받아서 혼자 갔던 곳이 지리산이고, 화엄사였다.  아내에게 그때쯤 갔던 일을 자세하게 이야기 하진 않았지만 나는 다시 지리산에 갔고, 구층암에 들렀다. 화엄사 가는길은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딱봐도 가을길엔 절경이었을 화엄사 들머리를 들어서자 아내는 이렇게 멋진곳을 어찌 제혼자 왔냐고 타박을 했다.
 워낙에 거대한 사찰인 화엄사는 경내에서 아메리카노 파는 곳이 생길만큼 뭔가 현대화된 모습이었지만 각황전과 대웅전은 옛모습 그대로였다. 몇 년전부터 절에가면 꼭 하게 되는 백팔배를 하면서 늘 느끼지만 이런저런 생각이 떠오르다가 80번을 넘기면 늘 머릿속에 잡념이 사라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교회 권사이신 장모님은 싫어하실게 분명하지만) 아내 지갑에 오만원밖에 없다해서 오만원을 내고 연등을 하나 달았다.  늘 흔들리는 것은 내 마음인지라..
 화엄사 대웅전 뒤 계단을 오르면 나있는 예쁜 대나무 숲길을 지나 구층암에 다다르니 선방에 구층암 방장이신 덕제스님이 마침 문간에 앉아서 차를 마시며 불자분과 이야기하고 계셨다. 조심스레 인사를 드리고 아내와 차를 청해 마셨다. 벌써 7년이나 지난 일이라 기억하기 어려웠겠지만 마음이 괴로운 김에 구례에 가서 태워준 보살님 덕분에 하룻밤 신세진 일이며 그 보살님이 '계란보살'이라고 불리우는 공감능력 떨어지는 아주머니라는둥 옆에서 총무일을 보시는 보살님이 이야기를 하자 스님은 그때의 일을 어렴풋이 기억하시는 듯 했다. '지금은 괜찮아 졌느냐'고 물어오시시기에 '그때에 비하면 별 일 아니지요' 하며 그때의 고마움을 이야기 했다. '사람들은 힘들때만 찾아오지 괜찮아지면 더는 찾아오지 않는다'며 너털웃음을 지으셨다.
나는 지금 힘든것인지.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나이먹는 것만 빼고는 참 좋은 시절이다. 회사일이 7년째인지라 나도 이제 매너리즘에 빠지지나 않는지, 좀 안일해지지 않았는지, 혹은 이런저런 불안과 불만은 어쩌면 내 머릿속에만 있는, 현실에는 나타나지 않을 공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회사밥을 같이 먹던 친한 동료는 내가 이런 이야길 할때마다 사람좋은 웃음을 지으며 그저 내가 생각이 많은 것이라 이야기하곤 한다. 그에게 나는 복이 많은 사람이다.
누군가에게 나는 복이 많은 사람일수도, 품안의 호박을 수십개를 걷어찬 재수없는 사람일수도 있다. 상대적인 것이란 그런것이다. 내 품안의 보석도 하찮게 보이게 하는 눈 앞의 깍지 같은 것.
그때의 괴로움은 나를 마지막까지 몰아붙이는 절대적인 것이었으나, 지금은 상대적인 것으로 바뀌어 있을 뿐이다. 투자자는 생각이 많다.
 스님이 내주는 차를 마시면서 '이제 갈까' 하는 생각을 하던중에 설연휴중이라 많은 신도들이 들어와서 한꺼번에 세배를 해서 우리 가족도 스님께 그 참에 삼 배를 올리고 물러서려는데 스님이 세뱃돈이라며 예쁜 헝겊지갑을 네 개 주신다. 해우소에는 전에 없던 양변기가 들어앉아 있다. 주머니를 열어보니 곱게 접힌 천원짜리와 부적 한 장씩이 들어있었다. 절을 내려와서 예원이라는 토속 한식집에서 버섯전골과 나물전을 먹고 빗자락이 굵어지는 통에 노고단으로 가는길을 옆에 두고 다음을 기약하며 서울로 향했다.

서울로 오는 길에 다시 임실치즈테마파크에 들러서 치즈며, 요구르트같은 먹을거리를 사들고 6시간쯤 지나 서울에 도착했다. 청주에서 들은 아버지의 재산분배문제라던지 층간소음으로 아랫집의 무례한 도발, 작은아버지의 재가와 미숙, 주용이의 갈등같은 집안의 이야길 듣고 머릿속이 잔뜩 복잡해져서 찾아간 비오는 화엄사의 고즈넉한 풍경이 뒤죽박죽이 된 여행이었다.
그래도 화엄사는 지리산에 고요히 안겨 있었다. 다음주면 일을 하나 마무리짓고 다음일을 시작해야 한다.
문제를 주는 것은 주변환경이지만 결국 문제는 내 손으로 해결해야 한다.

회사에 대한 번뇌때문에 일주일에 네 시간 일하는 법을 쓴 '네 시간'이라는 책을 주마간산으로 훑어보았다. 눈에 잘 들어오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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