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생활/여행

곰배령 탐방기

cocon 2010. 8. 23. 14:03

날씨도 무더운 금요일 오후, 클리앙에 접속해서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다가 눈에 번쩍 뜨이는 글을 하나 발견했다.  

오늘 민박을 예약해놓았는데,
급 와이프님이 아프시다네요....

민박집 주인이 방을 팔기전까지 환불은 안된다고 하셔서
클리앙분들이 가셨으면 하는맘에 올려봅니다.
혹시 방이 팔려서 환불을 받거나 (그럴 가능성은 없어보입니다 ㅎ)
클리앙분이 이용하게 되면 이글은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인제군 기린면 곰배령 근처에 있는 민박이구요 (오지이지요 ^^)
민박집 홈피에 따르면 시설은 아래와 같습니다.

취사시설 / 수세식 / 온수사용 / 냉장고 / 벽난로 / 침대방

쪽지주셔요 ^^

http://clien.career.co.kr/cs2/bbs/board.php?bo_table=park&wr_id=2766805&sca=&sfl=wr_subject&stx=%EB%AF%BC%EB%B0%95

지난 휴가때 2박3일을 못 채우고 돌아와서 아쉬움이 진하게 남아있던 터라, 바로 마눌님께 전화를 했다. 이번주에 여행가자고. 마눌님은 애들은 어쩌고 준비는 어찌하냐며 반대를 하셨지만 집에는 에어콘도 없었고 그날은 정말 찜통에 들어가 앉아있는것처럼 더운 날이었다. 30초정도 생각하다가 그냥 질러버렸다.
쪽지를 보내 하룻밤 무료 일박 여행은 성사되었고 TV다큐멘터리로 보앗던 '곰배령 사람들'을 볼 생각에 부풀어 곰배령을 찾아보았다. 

강원도 인제군 점봉산 남쪽자락의 곰배령은 초여름의 신록을 만끽할 수 있는 최적의 산행코스다. 점봉산 일대는 울창한 원시림에 계곡이 깊고 각종 희귀 야생화가 자생, 국내에서 생태보존이 가장 뛰어난 곳 중의 하나로 꼽히는 곳.

곰배령코스는 산세도 완만하고 구간도 짧아 이같은 점봉산의 진수를 만끽하면서 가족단위 산행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계곡의 청량한 물소리를 들으며 녹음이 짙은 계곡을 걷다보면 선경에 들어가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http://www.koreasanha.net/san/gombaeryeong.htm

 초여름의 신록, 좀 더 찾아보니 곰배령은 8월이 야생화를 감상할 수 있는 최적기라 했다. 세쌍둥이네 풀꽃세상이란 민박집이에 11시쯤 도착할거 같다고 예약 확인을 하고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서

"당장 짐 싸 더워죽겠는데 여기 있는거보다 백배 나을거야!"
"먹는 건 어쩌구?"
"가면 있겠지 뭐!"
"@%$%^$%&^%*&**&$##$#"

오후 6시 20분 출발. 막히고 답답한 서울 시내를 횡단해서 춘천 고속도로로 진입한 시간 7시 30분. 생전 처음 타보는 춘천고속도로를 네비게이션의 안내에 따라 무작정 달려 인제에 도착했다. 국도에서 빠져 지방도로 접어드니 칠흑같이 어두운 밤길에 마주오는 차하나 없이 줄기차게 고개를 넘고 굽이를 돌아 진동계곡에 들어섰다. 숙소에 도착하니 11시가 되어 있었다. 이웃집 일행은 벌써 도착해서 고기를 한번 구워먹고 간단히 맥주로 술추렴을 하고 있었다. 여장을 푸느라고 마당을 왔다갔다 하니 자신은 의정부와 서울에서 왔노라며 어디서 왔냐고 말을 건넨다. 

"서울에서 왔어요. 오늘 오전만해도 이런데가 있는지 TV로만 알았는데 직접 오게 될줄 몰랐어요."
"오 그래요?
"인터넷 커뮤니티 클리앙이란 곳에서 오늘 못오신다고 하셔서 제가 오게 됐어요. 집사람은 오는동안 계속 궁시렁 거렸는데 제가 그냥 지른거죠"
"하하하~ 원래 여행은 질러야 맛이죠"
"그나저나 이 근처에 지금 뭐 라면같은거 사올만한 가게같은건 없나요?"
"이근처에 지금 하는데에는 없을거에요"
"대책없이 질러서 오는데 가면 있을까 했는데 이거원 아무것도 없네요"
"하하하~ ^^ 그럼 이거라도 좀 같이 드시죠~"

아.. 그러자 마음씨 좋은 아저씨 내외는 우리에게 맥주 두 캔, 오징어 한 마리, 과자며 과일을 챙겨주셨다. 서울서는  이렇게 민망하면서 고마운 잘 안생기는데, 여행은 사람의 마음을 열리게 하나보다.

"내일 곰배령 가세요?
"아뇨 애도 있고해서 망설이는 중이에요"
"아~~~!! 여기까지 오셨으면 곰배령 가야죠. 지난주가 꽃이 진짜 좋을때고 저희들이 오늘 다녀왔는데 약간 지긴 했지만 정말 좋아요"
"아.. 그래요~"  아내를 바라보며 
"들었지? 곰배령 꽃이 좋대!"

아이들을 재우고 아내와 다음날 일정을 이야기했다. 쌍둥이 남자아이에게서 예약하신 분께서 내일 예약한 사람만 갈 수 있어서 길이 없었던 곰배령 탐방도 예약했으며, 우리가 그 분 가족인것처럼 가자는 계획에 아내는  회의적이었다.

"아침은?"
"올라가는 길에 사먹든가 그러면 되지. 그리고 올라가는길이 두시간이면 넉넉하다잖아 아홉시 탐방 시작이면 열두시면 넉넉히 내려올거야"
"그러자고.."

숙소앞의 불이 꺼지자 인제의 하늘을 올려다 보며 맥주를 홀짝였다. 숙소앞에 있는 개울소리는 쉴새없었고 하늘엔 참 오랜만에 보는 뿌옆고 반짝이는 별이 촘촘이 박혀 있었다. 참 오길 잘했다.  콧속이 시원해지는 공기를 마시며 한참을 별을 바라보다 잠들었다.

곰배령의 야생화

 아침에 요란하게 문두드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내 차때문에 차가 못 빠져나간다고 난리가 난 것이다. 전화가 6통도 넘게 걸려와있고 참다못해서 숙소 문을 두드린 것이다.  연신 죄송하다는 말을 하며 차를 빼놓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군대시절이 생각나게 하는 두메산골이다. 시간은 6시 20분. 어제 이웃아저씨가 준 밤과 물로 아침을 간단히 해결하고 있는데 아내는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물을 덥혀서 커피한잔을 한다. 처가에서 커피믹스를 챙겨온 것이다. 저렇게 커피를 좋아하다니! 숙소를 나서면서 이웃집 아저씨께 감사한다는 인사를 드리고 숙소를 나섰다. 8시 40분.

약도를 잘못 읽어 양수발전소까지 올라갔다 오는 삽질끝에 비포장도로를 질주해서 곰배령아래 주차장에 차를 댔다. 이제 올라가는길이다. 나는 종민이를 안고, 아내는 종혁이 손을 잡고 하늘마저 가릴 기세로 우거진 울창한 숲길을 걷기 시작했다. 올라가는 왼쪽에 흐르는 계곡은 수정같이 맑고 물도 콸콸콸 흘러 작는 소와 계곡이 이어지는 길이었다.

길을 성큼성큼 걷고 있는데 뒤에서 부르르릉~ 하는 오토바이 소리가 들려온다. 우리가 길을 비키려고 길가에 비켜서니 할아버지가 어디까지 가냐고 묻는다.

"어디까지 가세요?"
"곰배령 올라가는데요?"
"타세요~!?"
내가 탈 자리까진 없었고 이웃과 이야기하는 것에도 신세지는것에도 익숙하지 않은 아내는 주저하다가 냉큼 4륜 오토바이에올라탔다. (힘드니까 낯선사람이 모는 오토바이를 덜 망설이고 타드만요..ㅋㅋ)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할아버지께 아이 둘을 먼저 태우고 앞에서 기다리라며 나는 슬슬 걸어올라갔다. 당황한 종민이는 엉엉 울면서 눈앞에서 사라졌다. 작은 폭포가 보이고 사진을 찍으며 조금더 길을 접어드니 벌통이 여럿 놓여있는 집에 종혁이와 종민이 아내가 보였다. 집에 강아지 세마리가 우리를 졸졸 쫓아 올라왔다.
오는길에 먹으라던 미숫가루와 곰취짱아찌 파는 젊은 부부네 집이 보여서 잠깐들러 미숫가루 두 잔을 마시고 강아지와 헤어지고 징검다리를 건너 본격적인 좁은 산길로 올라갔다.

 

산길은 험하거나 급경사는 없었지만 곰배령 골짜기에는 습기가 가득했다. 땀이 잘 증발되지 않아서 비오듯 땀이 쏟아졌다. 7m는 되어 보이는 폭포를 가로지르니 약간 경사길로 접어든다.  종민이를 팔을 바꾸며 안고 가니 지나치는 아저씨 아줌마들이 다 한마디씩 한다.

"아이고 아빠가 고생이네~"

아닌게 아니라 내 고집으로 네 식구를 여기까지 데리고 와서 비지땀을 흘리고 있으니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다. 쉬운 산이긴 하지만 애를 안고 오르기는 고역이었다. 가다가 쉬다가 가다가 하는길에 종혁이가 물에 신발을 적셔서 발이 아프다고 투정을 부렸다. 아이고 애비의 욕심때문에 어린 아들내미가 고생하는구나.종민이를 데리고 오르느라 뒤쳐진 아내를 기다리며 꼭대기가 머지 않은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았다.  잣나무와 신갈나무 고사리와 이름모를 나무가 빽빽이 들어차 있었다. 나무가 나이를 먹어 수명을 다하면 고사목이 되고, 고사목은 미생물과 버섯에 의해 쓰러져 흙이 되고 다른 미생물들의 먹이가 된다. 벌써 밑둥이 썩어서 쓰러진 고사목이 여럿 보이는 것을 보니 이 숲은 여러세대를 거친 아주 오래된 숲인게 틀림없다.

10여분을 더 오르니 곰배령 정상이었다. 갑자기 시야가 확 트이고 풀과 꽃이 우거진 곰배령 정상에는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북동쪽으로는 설악산이 동쪽으로는 점봉산이 보였다.

드넓은 산 꽃대기의 언덕은 제주도의 오름이나 알프스 초원과 같은 풀밭이었고 8월에 한창이라는 이질풀, 이제 한창때가 지나고 있는 동자꽃, 곰취나물꽃이 한창이었다. 종혁이는 배가 고픈지 옆자리 등산객옆에서 연신,

"계란 먹고싶다~~~~~"를 외쳐댔다. 먹을거라곤 물 몇병이 다인지라 얼굴이 화끈거린다.

 듣다 못했는지 옆에 있던 등산객 가족이 계란 한 개를 종혁에게 건넸다. 녀석 넙죽넙죽 잘도 받아먹는다. 하나 더 먹을테냐고 물으니까 마다하지도 않고 계란 한 개를 더 받아서 먹는다. 거기에 과자도 얻어먹고 사과도 얻어먹은 녀석은 이제 연양갱을 준다니 이가 썩는다면서 받아먹지 않는다. 네 이녀석 네가 싫어하는거라서 안먹는거 다안다고 너털웃음을 지어줬다. 종민이를 이고지고 올라온 피곤함과 나른함에 휘감겨 스쳐지나는 시원한 바람을 느끼며 주저앉았다. 백두대간을 올라타 흘러가는 바람은 시원하고 맑고 부드러웠다.

산에서 고추를 달랑거리며 돌아다니는 종민이, 배를 적당히 채운 종혁이를 데리고 다시 하산행. 내려가는 길에도 종민이는 꾸벅꾸벅 졸았고, 나는 땀을 비오듯 흘리며 엉덩방아도 찧고 계곡에 발도 담그며 강선리 마을을 지나쳐 산 아래로 내려왔다. 내려오니 네 시였다.

이제 운전대를 잡고 선녀와 나뭇꾼에서 시골정식을 먹고 인제 진동계곡 옆을 지나 내린천을 뒤로하고 서울로 향하는길. 산에 올라가면서 맑은 공기를 마신 뒤라 몸은 피곤하지만 마음이 편안하고 기분이 상쾌했다. 여행에서 많은 사람들이 베풀어준 호의와 따뜻한 시선을 잊지 못할것 같다. 이 여행의 시작도 인연으로 엮여져 많은 사람과의 만남과 인연으로 자연의 시원하고 맑은 호흡과 사람의 따뜻한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어진한 사람은 산을 좋아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한다 했던가.

곰배령처럼 푸근한 산에 사는 사람은 마음이 절로 어질어 질 수 밖에...
더위에 찌들고 지쳐서 날카로와있던 아내가 산에 다녀오니 조금은 푸근해진것 같아 마음이 좋았다.

 知者樂水 仁者樂山 知者動 仁者靜 知者樂 仁者壽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움직이나, 어진 사람은 고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지혜로운 사람은 즐겁게 살고, 어진 사람은 오래 사는니라.)
[신역논어, 이기석, 한백우 역, 신홍문화사,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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